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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Sep 28. 2020

[영화] <대니쉬걸>(2015)와 게르다 베게너


오늘은 2015년 개봉한 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의 게르다 베게너(Gerda Wegener)의 작품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에이나르 베게너(Einar Wegener, 1882~1931, 에디 레디메인)과 초상화를 그리는 게르다 베게너(알리시아 비칸데르) 화가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 둘은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만나 결혼을 했어요. 어느 날 게르다의 여성 모델이 오지 못하게 되자, 게르다는 남편에게 여장을 하고 모델을 부탁했고, 에이나르는 릴리 엘베(Lile Elbe)라는 가명을 쓰고 여성을 연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난후, 에이나르는 자신이 외형은 남성일지라도, 자신의 내면은 여성이라고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게 됩니다. 에이나르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에이나르와 게르다의 섬세한 심리묘사예요. 두 배우의 연기도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답니다. 특히 게르다는 에이나르의 결정을 지지하며 돕는 성숙한 사랑을 보여줘요. 에이나르 베게너는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인물이며, 이 영화는 데이비드 에버쇼프(David Ebershoff)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이 소설은 릴리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쓰여 졌습니다. 


게르다 베게너 <A Summer Day> 1927, < Ulla Poulsen in the ballet Chopiniana> 1927


에이나르의 풍경화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게르다의 여성 초상화들은 덴마크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에이나르가 릴리로 변하면서, 게르다의 뮤즈가 되었고, 릴리의 초상화는 점차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게르다는 파리 예술계에서도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영화에 나온 회화 작품들은 게르다의 작품을 똑같이 모사한 것은 아닙니다. 남자 주인공인 에디 레디메인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조금씩 변형을 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개봉에 힘입어 2016년 덴마크의 아르켄현대미술관에서는 매우 큰 규모로 게르다의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게르다 베게너 <Sur la route d'Anacapri> 1922, <Queen of Hearts (Lili)> 1928


게르다 베게너는 패션에 영감을 많이 받았고, 보그(Vogue), 라비파리지엔(La Vie Parisienne) 등의 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게르다는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포즈를 취한 여성 누드를 그리기 시작하였어요. 그의 작품은 ‘레즈비언 에로티카(lesbian erotica)’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게르다의 에로틱한 페인팅은 미술 전시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대중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게르다의 유명세로, 이 둘은 결혼이 무효화되게 되는데요. 당시 덴마크에서는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적으로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르다의 여성 초상화는 1920-30년대 유행했던 디자인 양식인 아르데코(art deco)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르데코란 1925년 파리의 장식미술 및 산업미술 국제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e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에서 따온 ‘아르 데코라티프(art decoratif)’의 약자로, ‘장식예술’이라는 뜻이예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누보의 뒤를 이은 공예미술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르누보가 흐르는 듯한 곡선이 주가 되었다면, 아르데코는 날렵한 형태와 단순화한 선, 기하학적 패턴과 대담한 색채 등이 특징입니다. 아르데코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는데요, 공업적 생산 방식을 미술과 결합하여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했지요. 



게르다는 덴마크에서 아르데코 양식의 작품을 선구적으로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젠더의 경계를 뛰어넘는 대담함을 보여주었어요. 또한 미술 작품안에서 다루어지는 여성, 그리고 시선(gaze)에 관해 재고찰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전까지 여성은 작품 안에서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게르다는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당당하게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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