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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Oct 03. 2020

[뮤지컬] <블러디 사일런스>와 대천사 미카엘

뮤지컬 <블러디 사일런스> 포스터; 라파엘로, <악마와 싸우는 성 미카엘>, 1518

대학로 창작뮤지컬 <블러디 사일런스: 류진 더 뱀파이어 헌터>는 당찬 사격 선수(장류진), ‘착한’ 절세미남 뱀파이어(김준홍), 구마사제(최헌식)가 힘을 합쳐 ‘나쁜’ 뱀파이어(생제르맹)에게 대항하는 내용의 코믹소동극입니다. 극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구마의식 장면에서 무대에 사용된 그림 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바로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가 교황 레오 10세를 위해 제작한 <악마와 싸우는 성 미카엘>입니다. 대천사 미카엘은 요한묵시록에서 언급된 대로 악을 상징하는 용을 무찌르고 있는데, 하느님의 군대를 이끄는 통솔자다운 용맹한 모습으로 악마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긴 창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순간입니다. 

틴토레토, <악마와 싸우는 대천사 미카엘>, 16c; 라파엘로, <성 미카엘>, c.1504-05

미카엘은 위의 그림들처럼 주로 갑옷으로 무장하고 악마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거나, 혹은 악마를 밟고 선 승리자로 묘사되곤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피 땀 눈물"
피테르 브뢰헬 1세, <반역 천사의 추락>, 1562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서 진이 홀린 듯 바라보았던 그림은 브뢰헬 1세(Peter Bruegel the Elder)의 <반역 천사의 추락>입니다. 미카엘의 군대와 악마 간의 전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에요. 갑옷을 입고 긴 창과 방패를 든 대천사 미카엘이 화면의 정중앙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길게 늘어진 푸른색의 망토는 그가 하느님의 군대를 통솔하는 책임자임을 알려주는 표식입니다. 그런데 라파엘로와 브뢰헬 1세의 그림에서 악마들이 천사와 마찬가지로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악마 역시 원래는 천사였다는 성서 내용에 따라, 미카엘과의 전투에서 지옥으로 추방된 루시퍼를 따르는 (과거에는 천사였지만 이제는 악마가 되어버린) 반역 천사들을 표현한 것이지요. 이들은 아름답고 성스럽게 그려지는 하늘의 천사들과는 달리 날개의 형태만 유지할 뿐 추악하고 끔찍한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한때는 천사였던 존재들이 하느님에게 맞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함으로써 나비 혹은 나방의 날개를 단 파충류나 어류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최후의 심판>, 1446-52

악마를 처단하는 역할과 함께 대천사 미카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은 최후의 심판에서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입니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로히르(Rogier van der Weyden)가 그린 <최후의 심판> 제단화에서 미카엘은 하느님의 발 아래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한껏 위로 솟은 화려한 날개를 단 미카엘이 오른손에 저울을 들고 있지요. 그리고 저울의 양쪽에는 기도 드리는 자세의 선한 영혼과 지옥으로 끌려갈 것을 두려워하는 죄를 지은 영혼이 올려져 미카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카엘은 악마를 무찌르는 전사인 동시에 영혼의 무게를 다는 심판관이기도 합니다. 

도소 도시, 바티스타 도시, <악마와 싸우는 대천사 미카엘과 천사들과 함께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 c.1533-34; 페리노 델 바가, <악마를 찌르는 대천사 미카엘>, 1540

위의 두 그림은 미카엘의 대표적인 지물을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도시 형제(Dosso Dossi and Battista Dossi)의 <악마와 싸우는 대천사 미카엘과 천사들과 함께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의 상단에는 구름을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성모 마리아가, 하단에는 악마에게 승리한 미카엘이 묘사되어 있는데요, 긴 창을 든 미카엘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저울이 보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페리노(Perino del Vaga)의 그림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어요. 승리의 미소를 띤 미카엘이 날개를 달고는 있지만 염소의 뿔과 판의 귀를 가진 악마로 변해버린 반역 천사 위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미카엘의 왼손에는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저울이 들려 있고, 각각의 접시에는 무릎을 꿇고 미카엘을 향해 구원을 간청하는 영혼이 그려져 있어 승리자이자 심판관인 미카엘의 대천사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

뮤지컬 <블러디 사일런스>에서 뱀파이어에게 맞서는 구마사제의 기도는 미카엘에게 전해졌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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