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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달빛 Sep 12. 2023

질문 21번. 스탠딩 오베이션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21>

글쓰기 질문 21/642: 과거 고등학교 시절, 지금의 당신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J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화면 조정 시간을 알리는 TV에서나 듣던 '삐이-'하는 이명이 그녀의 귓가를 헤집어 놓았다. J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 보았다. 누군가는 입을 틀어막고 눈가에 눈물을 그렁거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반대로 입을 떡 벌린 채, 손바닥이 벌겋게 되도록 쉴 새 없이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고, 또한 또렷했다. J는 혼자서 시공간이 분리된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와아아아아!"

"브라보! 브라바!!"


찰나의 이명이 지나간 후, J는 다시 현실세계로 복귀했다. 엄청난 환호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무대 위 배우들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가 다시 관객들에게 키스를 보내며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배우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좌우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의상에 부착된 화려한 보석들이 무대 조명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였다.




J는 이 국내 라이런스 초연 뮤지컬을 보기 위해 몇 달 동안 용돈을 모아 VIP 좌석 티켓을 구매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향인 광주를 떠나 서울행 고속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서', 띄고, '울' 이라고 도도하게 써 있는 톨게이트를 지날 때는 가슴이 쿵쾅거리기까지 했다. 여기가 서울이구나.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높은 빌딩에서, 도로가 아주 넓은 곳에서 사는구나, 싶었다. J는 '서울'이라는 두 글자에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더플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광주 -> 서울'행 버스 티켓을 힘껏 구겼다. J는 그렇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이라는 것을 타고 공연장에 도착해서 꿈에 그리던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J는 한 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모든 관객들이 공연장 밖으로 나갈때까지 그녀는 화려한 무대 장치들을 가려버린 묵직한 커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스탠딩 오베이션을 보냈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J는 불현듯, 무대 위로 올라가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무대 쪽으로 향했다. 어찌된 일인지 공연장 관리자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그녀는 무대 가장자리에 위치한 계단으로 다가가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누구시죠? 여기 올라오시면 안됩니다. 어서 내려가세요."


말쑥한 회색 정장에 파란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J를 제지했다. 까만 뿔떼 안경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매서웠다. J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 앞에 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J는 알지 못했다. 그 남자가 앞으로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을 키다리 아저씨이자 인생의 멘토가 될 것이라는 것을.




<굴쓰기 좋은 질문 642> 책 중에서 마음이 가는 주제를 골라 글을 씁니다. 글의 형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저의 성향상 아무래도 소설 형식의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P.S. 위 글의 대부분은 사실입니다. 맨 마지막 무대에 올라가 한 남자를 만난 이야기만 빼고요. 그랬더라면 지금쯤 저는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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