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그동안의 사회적 통념상 대답은 언제나 No 였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틀린 말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돈을 쓰는 대상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위의 주장들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일 때 해당되는 말이다.
필자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정말 재밌거나 혹은 감동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 꼭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남'과 공유하는 것이다. '남'은 대체로 필자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가 소개해준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느꼈던 행복감을 같이 느낀다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된다. 그러나 당장에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그 감동을 나 혼자만 느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감동의 끝은 항상 외롭고 공허하다.
돈도 마찬가지였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쓰였을 때 그 끝은 근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자극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고 결국 더 소비를 하거나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자랑을 하게 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쓰였을 땐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남'이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면...예를 들어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라면...조금은 근본적인 행복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한번 상상해보자.
당신에게 큰 돈이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벤틀리를 살 수 있다. 청담동에는 당신의 고급 주택이 있다. 언제든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비행기는 항상 일등석으로 결제할 수 있다. 7성급호텔의 연간 회원권이 있어 스위트룸을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고 수백만원짜리 스파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머릿 속에 모습이 그려지는가? 그런데 만일...
그 공간에 당신의 부모님이 함께 한다면, 남편과 아내와 함께 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한다면...
여전히 공허한 행복인가
그들이 좋아하는게 진심이 아닌 가식처럼 느껴지는가
그들의 행복을 보아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가
당신이 가족에게 베풀 수 없는 상황에 닥쳐야만 가족과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아끼려고 할까
필자가 대답해 보겠다.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보게 되면...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있는 행복함이 느껴진다.
그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베풀었으니까...
그들이 행복하면 나는 더 행복하다.
나의 베품으로써 그들의 행복을 보면서 이 행복을 더욱 크게 키워 나가고 싶다. 더 소중히 아끼고 싶다.
이것은 글의 첫 부분에 표현된 4개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돈의 초점이 무언가를 살 수 있다에 맞춰지면 그 끝은 공허함 뿐이다. 사람은 동일한 자극에 내성이 생겨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에게만 향한 일방적인 행복감은 어느새 동일한 자극이 되어 무뎌지게 된다.
돈의 초점이 무언가를 사줄 수 있다에 맞춰지면 전혀 다른 성격의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상대를 통해 얻는 행복감은 그 상대에 따라 특성이 매우 다르다. 많은 사람에게 베풀면 베풀 수록 다양한 특성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다양한 자극의 행복이 되기에 무뎌질 틈이 없게 된다.
'살 수 있다'와 '사줄 수 있다'는 단 한 글자 차이이다.
당신의 마음도 한 끗 차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이 오로지 '나'를 위해 쓰이면 행복은 멀어지고, '모두'를 위해 쓰이면 행복은 다양해진다.
즉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은 내 자신을 위해 쓰려고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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