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임리치 May 08. 2019

갈수록 외로움의 시간이 증가하는 이유

시간부자 156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에게 간만에 연락을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한참 대화를 나눈 뒤 친구는 내게 말을 남겼다.     


“연락줘서 고마워”     


순간 그 말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왜였을까?     


- KBS 드라마 '느낌' 중 -


1990년대에 방영했던 한 드라마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느 한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분명히 그 당시로서는 매우 일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을, 아니...톡 하나만 남겨도 될 일을 저렇게 무식하게 집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니...’     


공중전화가 길거리에 만연했던 시절 전화기는 의사소통의 주된 수단이 아니었다. 급한 용건이 있을 때만 사용을 했다. 급한 용건이 생겨도 공중 전화기가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공중전화가 주변에 있다 하더라도 막상 걸 곳 또한 없었다. 휴대 전화 자체를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머나먼 미래 세상의 이야기였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만나서 이루어졌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안부를 묻고, 용건을 얘기하고...모두 직접 만나야만 가능했다. 그래서 함께 있는 동안 만큼은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내 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사이를 끼어드는 전화나 톡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사람간의 관계를 이루는 100% 요소였던 것이다. 혹여나 친구가 개인사정으로 1시간 거리나 되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슬퍼하며 송별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그 친구와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금의 1시간 거리가 당시에는 2시간 거리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란 것이 나타났다. 아무리 멀리 있는 사람과도 24시간 쉽게 연락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며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사람간의 물리적 거리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식이 실시간 폰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전에는 물리적인 거리만 있다면 혼자만의 시간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물리적 거리가 무의미해졌다. 실시간으로 연락을 하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 스스로가 서로간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연락이 와도 연락을 받지 않거나, 연락을 할 수 있어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만의 연락 기준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음을 열 수 있는 준비가 됐을 때에만 연락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열리는 마음의 문처럼 됐다. 즉 마음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물론 실시간으로 가능해진 통신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바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의 노골적인 크기이다.    

 

폰이 없던 시절 너와 나의 물리적 거리는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애물 역할을 했다. 장애물이 없어졌을 때에만 서로가 소통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은 일종의 가림막 역할이기도 했다. 일상 생활에서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의 정도가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게,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의 정도가 나에게 드러나지 않게 말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가 사라진 지금의 너와 나는 의사소통을 자신의 선택으로 한다.


언제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준비가 되었을 때, 여유가 생겼을 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렸을 때만 너와 소통을 시도한다. 즉 너를 향한 내 마음의 크기가 나의 바쁜 일상의 피로도보다 더욱 커졌을 때 너를 찾는 시도를 한다. 문제는 그러한 정황 하나 하나가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같은 시스템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시스템에서는 연락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추측이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상대의 연락이 곧 나를 생각하는 상대 마음의 크기임을 반영한다. 그래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연락할 수 있지만 연락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는 1시간이 넘는 물리적 거리를 이겨내서 상대에게 다가가야만 감동을 줄 수 있었다. 그것외에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표현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진심의 말한마디가 더욱 극적으로 와닿는 현실이 돼버렸다.

    

“그냥 니 생각이 났어”     


조그마한 스크린 화면에 몇 번의 손가락 터치만이 있으면 될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뭉클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나보다.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time_rich_pnj/


네이버포스트                

http://naver.me/Fr1zxehp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