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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Nov 28. 2018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시간

시간부자 126화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 영화 진짜 재밌었는데, 그치?"

"오빠, 나 그 영화 본 적 없어. 도대체 누구랑 본거야?


자세히 생각해 보니 아내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사람과 봤던 영화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다. 아내의 기분은 급격히 다운되기 시작하고 나는 그 순간부터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롯데월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스케이트 진짜 재밌었는데, 그치?"

"오빠, 나 오빠랑 스케이트 탄 적 없어. 도대체 누구랑 탄거야?"

"무슨 소리야! 분명히 너랑 탔었는데..."

"오빠, 어떻게 딴 사람이랑 했던 걸 그렇게 헷갈릴 수가 있어?"


계속 반박하다 보면 아내의 말이 맞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반박이 아니라 내 무덤을 파고 있는 일인 것이다. 앞으로는 정말 신중히 말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또 지난 사람과의 추억을 아내와의 추억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했다. 아내가 화를 내려고 하는 찰나에 나는 말을 건넸다.


"나는 왜 다 너랑 한 것 같지?"


아내가 피식 웃었다. 물론 어이없는 웃음이었을 것이다. 위기를 모면하는 능력이 날로 발전해간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정말이야, 다른 사람과의 추억인데 이상하게 얼굴이 너로 기억돼있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인지 이번엔 아주 크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이 말이 그녀의 기분을 적어도 나쁘게 하진 않은 듯 했다. 그런데 사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헷갈린다. 지난 사랑의 추억의 일들이 지금 아내의 모습과 자꾸 교차된다.



이별을 하고 나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기억만 생각난다. 그래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싸운다. 같은 이유로 상처를 주고 결국 또 헤어진다. 이젠 그 사람이 싫다. 그런데 힘이 들고 괴롭다. 그 사람을 잊었어도 좋았던 추억은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아닌 그 순간의 행복했던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행복을 추구하고 간직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 아닐까? 이별이 힘든 진짜 이유는 이제 더이상 그 행복의 느낌을 현재에서 느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것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때로는 새로운 사랑이 오히려 지난 사랑을 더욱 생각나게 만드는 역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사랑의 행복이 지난 사랑의 행복과 자꾸 비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결국 이별을 택하게 된다.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은 새로운 사랑의 행복이 지난 사랑의 아픔을 다 덮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훨씬 커야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의 대상이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행복이 우선이게 될 경우 나에게 더 큰 사랑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 게 아니다. 다른 사랑으로 덮어진 것일 뿐이다. 새로운 사랑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큰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가려져있던 지난 사랑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사람이 우선이게 될 경우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어 버린다. 상대가 나에게 주는 행복의 크기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작은 행복일지라도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그 사람이 된다.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에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이다. 행복보다 그 사람이 먼저가 된다.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일로 헷갈리는 이유는 나의 모든 행복은 항상 지금의 너에게서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은 지나간 사랑의 좋았던 기억들조차 현재의 사랑을 위해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사랑의 추억속에 있던 행복했던 순간들 마저도 나는 지금의 너와 함께 느끼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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