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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Nov 21. 2018

축가를 부르는 시간

시간부자 124화

지금까지 대략 스무번 정도의 결혼식 축가를 해본 것 같다. 처음에는 긴장을 너무 많이해서 신랑 신부는 안중에도 없이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 잡혀있었다. 그러다 보니 표정이 일그러져 있기 다수였다. 행복의 시작을 바라고 축하해주는 기쁜 자리인데 말이다. 물론 아직도 축가의 무대에 오르면 긴장이 되긴 한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가지 터득한 것이 있다. 바로 신랑 신부에게 진심을 전하는 법이다.


-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 중 -


싱어송라이터로 공연했을 당시에도 관객 20명을 넘겼던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결혼식 축가는 기본적으로 착석해있는 하객의 수가 100명 가까이 된다. 이름없는 인디 뮤지션에겐 당연히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자리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수에 집착을 했다.


'연주를 틀리지 말아야지'

'박자가 어긋나면 안돼'

'멋있게 들려야 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


집착은 더욱 긴장을 하게 만들었고, 긴장할 수록 신랑 신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땅을 보거나 눈을 감게 됐다. 표정은 세상 어두워졌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축가 리허설을 하기 위해 예식장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지금 이순간' 노래가 들렸다. 완전 프로페셔널한 성악가의 목소리였다. 누가 이렇게 노랠 잘하나 궁금함에 들여다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리허설을 해야 할 자리에서 그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친구의 결혼에 축가를 부르는 사람이 두명이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순서마저 내가 두번째였다. 더욱 비교돼서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화려하기만한 '지금 이순간' 뒤에 이어질 나의 노래는 그저 가사가 너무 좋아서 준비한 소박한 곡이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나의 느낌으로 편곡하다 보니 기타와 목소리로만 이뤄진 조용한 노래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 성악가 때문에 내가 초라해 보이면 어떡하지?'

'나는 발성이 저렇지 않은데..'

'내 노래가 저 노래에 묻히겠구나...'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나의 노래는 정처없이 흘러가겠구나'



 손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그 성악가(진짜 성악가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가 첫번째 축가 무대에 섰다.


"지금 이 순간...바로 여기..."


웅장한 발성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MR반주의 화려한 세션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고음으로 올라가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눈을 감으니 뮤지컬의 한 장면이 떠오를 듯 했다. 노래가 클라이막스에 달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를 위한 노래인거지?


사람들은 보통 아는 노래에 호감을 보인다. 그 노래를 누군가가 잘 불러준다면 더욱 좋다. 반주가 화려하면 더더욱 좋다. 마치 거대한 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티비에서나 다른 예식장에서 많이 보고 들어본 적있는 노래이기에 익숙해서 좋다. 즐기기에 좋다. 축가를 부르는 사람과 하객들이 즐기기에 아주 제격이다. 그 순간만큼은 축가자와 하객들이 주인공이 된다. 신랑과 신부는 사라진다.


"당신이 날 버리고 저주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듣는 순간 성악가와 비교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노래는 오로지 신랑과 신부를 위한 가사로만 이뤄져있기 때문이었다. 성악가의 관객이 하객들이었다면 나의 관객은 오로지 신랑과 신부였다. 그 성악가와 경쟁할 이유가 없어지게 됐다. 나는 내 노래를...아니 내 진심의 이야기를 신랑 신부에게 전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노래가 끝난 후 신랑 신부의 흐믓해하는 표정이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타를 정리하고 있는데 예식장 직원이 불쑥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노래 감동이었어요..."


응? 이게 무슨 일이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감사의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또 건넸다.


"축가 정말 잘들었습니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의 노래를 좋게 들어준 것은 분명 기분 좋을 일이었지만, 나는 하객들이 아닌 오로지 신랑과 신부만을 위해 노래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낯설고 묘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친구를 통해서 듣게 됐다. 신부와 신부의 많은 지인들이 나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이다. 그때 알게 됐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감동시키면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감동받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반대로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려하면 어떤 한 사람도 감동받지 못하게 된다.


그후로 나는 축가를 부탁받게되면 오로지 한 가지만을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신랑과 신부가 감동을 받을 수 있을지 말이다. 하객이 백명이든 이백명이든 천명이든 그 어떤 실력자 축가자와 함께 노래한다해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본래의 목적, 본질에 집중한다보면 부수적인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축가의 목적은 단 한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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