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아

<렛미플라이> 리뷰

by 졔졔니모
2022.04.24 일요일 @yes24스테이지 1관, 오의식 김지현 안지환 나하나


"나는 절대로 평범한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중1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범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다소 맥락도 없고 구체성도 없었지만 나름 당찬 포부를 가졌던 중학생은 그렇게 커서 평범한 어른이 되었지.


평범하지 않은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또는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법한 사랑의 결실을 맺어 행복한 가정을 꾸린 사람? 분야는 다양할지언정 평범하지 않은 어른은 대충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뭐야.. 수선.. 남원 수선..? 이 좁은 방 안에서 평생 수선쟁이로 사는 게.. 이게 고작 내 미래라고..?"


극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19살의 남원의 다소 평범한 미래와 실망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고향에 남은 이유와 살아온 나날들을 풀어내며 그의 삶이 정말 평범하였는가를 되묻는다.


남원은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진 못했지만 50여년 동안 꾸준히 수선집을 운영했을 만큼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주인공인 칠순잔치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노래로 열렬히 고백할 만큼 사랑 가득한 결혼 생활을 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들의 곁을 지키는 것을 선택한 정분이와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던 남원. 그 날 두 사람은 우주를 찾는 모험을 떠나는 대신 우주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지. 우주에 도달하는 방법은 내가 직접 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19살짜리들이 이렇게 현명해도 되는 겁니까?)


비록 처음 목표로 했던 곳에 도달하진 못했을지언정, 인생이란 여정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내 곁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며 걸어온 그 길은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다. 처음으로 선물 받은 라디오를 몇십 년 동안이나 고이 간직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컵케잌을 사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것 같은 작은 업적이 모여 삶은 빛을 발한다.


내가 꿈꾸던 미래, 너와 함께 하는 미래가 있는 이곳이 바로 나의 달이자 우주야. 우주 스케일의 로맨틱한 사랑을 치트키로 쓴 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꿈을 이루는 것보다 이게 훨씬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극은 꿈을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어릴 적 꿈꾸던 모습은 아닐지언정, 삶의 중요한 순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며 걸어온 삶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삶은 수많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좁아진다.


벽에 가로막힐 때마다 10년 뒤, 그리고 그 10년 뒤 멋지게 꿈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 없는 기대와 설렘은 차츰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쩌면 벽에 가로막히고 좁아지는 게 그 자체로 인생 아닐까. 걸음을 뗀 순간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보단,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현재 걸어가는 이곳이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내가 집중해야 하는 세계일지 모른다.


대단한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아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중학생의 내가 2022년으로 시간여행을 온다면, 결국엔 평범한 어른이 된 지금의 내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경영학을 전공하였지만 경영자가 되진 못한 평범한 회사원. 수많은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사이에서 잔고를 살피며 우선순위를 정하는. 30대가 되었지만 아직 독립하지 못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뉴스나 방송에서 내 이름 세 글자가 나올 일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언급될 일도 없을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어른. 그러나 그런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겪은 다양한 일들, 사람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그 속에서 경험해온 수많은 작은 성취와 감정만큼은 평범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앞을 향해 나아가되, 그 너머에 도달해야만 인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걸어온 길, 그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그 길 위에서도 나의 인생은 나만의 색으로 반짝이고 있다고. 지금 여기가 나의 달이고 우주라고.

매거진의 이전글평범한 악, 그리고 삶이 교차하는 순간의 구원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