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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17. 2019

04 :: 어쩌면 처음 보는

다시만난 그곳


 어릴 때부터 참 겁이 많았다. 나의 이런 쫄보적 성격은 10대 청소년기에 증폭 적으로 크기를 확장시켜 20대인 여대생 하지혜에게도 톡톡히 작용했고 내게서 가출하길 한사코 거부하던 겁 많은 성향은 20대 중반의 하지혜에게서도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물론, 때로는 이 성향 덕에 덕을 보기도 했다. 어디 여행지에서 위험한 곳 가는 걸 두려워하는 소심함이 발휘 되었던 덕에 칼부림 당하지 않고 여태껏 무사한 여행을 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고 캄캄한 밤이면 재깍 재깍 집으로 들어간 덕에 어쩔 수 없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럼 이 겁보적인 성격으로 얻은 단점은 뭘까? 그냥 이 것 외에 ‘모두 다’라고 보면 된다.



 머나 먼 타국 땅에서 사위가 캄캄해져 오는 시간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콩알만 한 간이었다. 이 탓에 여행 후의 내 외장하드에는 그 아름답다는 여행지의 야경 사진은 결단코 1도 없게 만들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또한, 밤의 길거리를 겁냈기에 8시만 되면 집으로 향했던... 너무나도 바름을 지향 했던 나의 발걸음 규칙은 무릇 여타 남성들에게 매력 지수를 뚝뚝 떨어뜨렸고 이런 연유로 연애엔 쥐약인 여성 하지혜로 전락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 내가 매 연말, 매년 돌아오는 봄,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쩌면 나의 성격 탓이겠지...



 이제 신세한탄은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서자면, 나의 외장하드 중 ‘영국 생활(2014)’ 폴더에는 거짓말 않고 런던에서 촬영한 야경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런던의 상징, 타워 브릿지의 야경을 담아낸 프레임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는데, 없다. 그것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게는 꽤 짙은 서운한 사실로 남게 되었다. 런던에서 생활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냔 말이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나 빼고 죄다 무서워 보였나 보다. 그런 후회가 지난 4년간, 내게서 달아날 생각을 않고 있었기에 이번, 첫 숙소는 특별히! 타워브릿지와 가까운 곳으로 잡았다. 그리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오랜 비행으로 피곤한 기운도 잊은 채 당장 타워 브릿지로 걸어갔다. 


     

 내 걸음이 템즈 강변에 가까워 갈수록 겨울밤의 기운과 강바람이 더 해진 런던의 기온은 낮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걸어가는 이 여정에 방해가 될 것은 없었다. 싸늘하게 불어오는 런던 밤의 바람도, 차가움을 한껏 품고 코끝을 스쳐가는 공기도 그저 나와 함께 이 시간을 즐기려하는 아름다운 동행자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다시 닿은 런던에서 어쩌면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순간, 그저 감격과 감동과 설렘, 행복, 기대감, 희망 등의 각종 긍정적인 수사들만이 시차적응도 채 하지 못한 나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적하던 골목길을 조금 벗어나니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해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한 데 뒤섞여 어울리고 있는 복작한 교차로가 나왔다. 그 건너편으로는 검게 번진 런던 밤 허공 중앙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런던탑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났다. 



런던 탑에 머무르고 있던 나의 시선을 조금 돌려보니, 높은 공중에서 쌍 라이트를 환히 켜고 그 존재를 확실히 발산하고 있는 런던의 타워 브릿지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래, 이건 분명 처음이었다. 2018년이 저물어가는 연말 밤, 다시 닿은 런던 땅에서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많은 관광객들의 틈 속에서 홀로 선 이 길 위, 내 시야를 차지하고 있는 런던의 타워브릿지를 마주하고 선 이 지금은 결코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으며 새로운 기대심이었고 신선한 설렘이었다.



 조금 전까지 꽤나 차분함을 쥐고 걷던 내 두 다리는 억눌렀던 설렘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양껏 발산하고 말았다. 천천히 걷기보다는 짧은 보폭과 빠른 템포의 걸음을 만들기 시작했고 짧은 들숨날숨 보다는 길고 깊게 이 밤의 공기를 들이마셔 내가 처한 분위기를 휘쓸어 온 육신에 담아 넣고자 했다.


 그렇게 여타 관광객들의 옷깃을 스치고 그들의 장면에 담기어 보며 나도 그들을 내 프레임에 담아보고 내 마음 속 한 편에 새로 담길 감성에 기록해 보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런던도 모자라서 거의 처음 본 런던의 야경을 두 눈으로 알알이 박아 두는데 이 순간, 노래가 빠질 수 없었다. 여행 준비하면서 에어팟을 사 두길 참 잘했구나 생각이 들던 순간이 아마 그 순간이었지 싶다. 곧장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에어팟을 꺼내 내가 마주 선 장면들과 어울릴 만한 곡을 선곡했다.


 4년 전부터 나의 런던 감성을 책임져 주었던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팝 가수, ‘아델’의 목소리가 가장 조화롭게 녹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는 역시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런던이 전하는 이 밤의 감성에 더 빠르게 빠지도록 이끄는 확실한 인도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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