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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있는추천 잇추 Nov 11. 2023

이 죽일놈의 낚시

남편의 취미는 나의 독박육아

 어느 순간, 남편의 취미가 낚시가 되었다. 특히 배낚시만 떠나는 남편은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서 새벽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 힐링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남의편이 낚시 가는 날은 오롯이 나 혼자 두 아이를 보는 독박육아의 날. 그렇다 보니 사실 힐링이고 나발이고 순순히 보내주기 싫다. 양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시간의 사투를 벌이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취미라니. 이건 분명히 사치다! 주중 내내 아이들 픽드롭 스케줄 짜 맞추고 방송일에 집안일까지 휘몰아치고 나면 주말은 너무 지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근데 이놈의 인간이 또 슬금 말을 꺼낸다. 어떤 달은 농어철, 이번달에는 주꾸미철, 뭐 매달 잡히는 어류가 다르단다. 여름이면 여름이라서 못 가고,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못 가니 이번에는 꼭 가야 해. 하고서는 한 달에 벌써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죽일 놈의 낚시!"


아니 나는 뭐 스트레스 안 쌓이나, 힐링이 필요한 건 나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입술을 꽉 깨물며 다. 녀. 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낚시를 가는 날이면, 조그만 방에서 낚시 용품을 정리하는 남의 편의 콧노래가 들리 운다.

"오빠, 그렇게도 재미있어?"

"네가 한번 같이 가보면 느낄 거야. 그 넓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 그냥 마음이 뻥~ 뚫려!"

"나도 가고 싶지. 근데 애들은 누가 봐!"

".............."


누구는 낚시 재밌는 거 모를까. 누구는 광활한 바다가 안 보고 싶을까. 애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않은가. 독박 부부에게 낚시라는 취미는 너무 사치인 거 정녕 모르나 보다. 세심한 남편은 낚시 용품도 참 가지런지 준비한다.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 없다. 이런 날에는 심지어 꼭두새벽부터 출발하지만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고 토요일. 오늘은 애들과 뭐 하지 하며 주말 아침을 맞이하면서 그냥 심술이 났다. 애들이 조금 컸다지만 주말 독박육아는 아직도 싫다. 아~나도 애들이랑 나가야지! 산책도 하고 집밥 안 먹고 외식할 테야.







 낚시를 가는 날은 싫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잡아오겠지 기대도 되었다.  왜냐면 내가 회를 무지 좋아하기 때문. 오늘은 농어낚시를 갔으니 자연산 농어를 먹을 수 있나~ 설레기도 한 마음이 든다. 어휴. 나도 알수 없는 이 죽일 놈의 양가감정.ㅋㅋㅋㅋ

드디어 양손 가득 들고 남의 편이 집에 들어왔다. 딱 저녁 시간이라 회를 못 먹는 애들은 반찬에 저녁을 주고 남편이랑 나는 자연산 농어를 먹었다. 제법 잡았네? 오늘 본인이 배에서 2등 했단다. 매우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니 속으로

싫어했던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자연산 농어 가로 얼마 얼마 설명하면서 맛표현을 하는데 피식 웃음 났다. 그리 행복한가.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하다면 좋은 거지. 확실히 자연산이라 두툼하고 쫄깃하고 고소했다. 낚시 다녀온 날은 무조건 한잔 하는 날. 또 이런 게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니깐 좋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남편이 잡은 농어인지 광어인지 사실 나는 구분 못함.



시에서 잡아온 농어를 SNS 올리니 반응이 폭발적이다. 도대체 이거 진짜 남편이 잡은 거 맞냐? 당장 회 주문해야겠다.  부럽다 등등. 어라 내가 생각한 반응과 전혀 다르네. 독박육아로 힘들었을 나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남길꺼라 생각했다.  가족을 위한 취미라고 했던 남편의 주장이 맞아떨어지는 것. 나를 설득할 때 계속 그가 한 말이 다른 취미와 다르다는 점을 계속 어필했다. 예를 들어 골프나 등산 이런 취미들은 자기 본인만 좋은 것이지만 낚시는 가족을 위해 먹거리를 꼭 가지고 오는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내가 또 꼭 뭐라만 할 수 없는부분이 바로 이놈의 인간 심지어 잘 잡아온다.  손맛이 기가 막힌 다고. 낭패해서 돌아온 적은 없으니 그래서 보내주는 것도 있었다. 꼭 잡아오리라는 믿음. 언젠가는 나도 남편 손 잡고 낚시하러 가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거부감 없이 재미있을 거 같은 것이 나도 왠지 이 취미가 잘 맞을 거 같다. 언젠가는 이뤄지겠지. 그전까지는 제발 적. 당. 히. 다니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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