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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03. 2021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작과 현재

미국의 노예 제도 18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억압인 노예제도는 미국의 식민지 이전부터 시행되어 왔다.



1619년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상륙한 아프리카인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작


초창기 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제공한 뒤, 응당한 대가를 받았다.


사실상 한시적으로 고용된 관계였다. 기간이 끝나면 자유를 얻었고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


구성원 중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갓 건너온 영국과 독일 출신의 백인 이민자도 많았다.


일반적인 계약 기간은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7년간 이어지기도 했다.



17세기 영국 신문에 실린 '포드 버지니아' 담배 광고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배경에서 노동 계약이 종료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자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불렀다.


영구 노예의 시작인 노예제도


하지만 재산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농장주의 계급(대농장주의 출현)이 발생했다. 농장주들은 이들을 영원히 종속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노예 법을 제정, 불평등한 조건을 명문화시켰다. 


이후 미국의 노예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실상 굴레를 씌운 것이다.


이후에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영구 노예(bond servant 또는 bondsman)가 생겨나면서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850년경 조지아 면화 밭의 노예 가족



두 차례에 걸쳐 계속 강화된 ‘도망노예법’은 이러한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북부와 남부의 갈등


남부는 목화의 재배를 위해 인간의 노동력인 노예가 필요했고 사실상 이들이 경제를 지탱하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노예 매매 등을 통한 가혹한 압박은 자유를 심하게 억눌렀고, 1831년에 내트 터너라는 사람이 백인 농장주의 억압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잔인한 진압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더욱더 심한 제재를 받게 된다.



잡히기 전의 내트 터너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북부에서는 제조업의 발달로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한 시기에 자유를 얻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고용하는 방안이 마련되면서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서게 된다.


이러한 두 지역의 논쟁과 다툼은 심각한 분열을 불러왔는데, 지역감정을 넘어 죽기 살기로 다투는 지경를 정도였다.


분열의 폭발과 남북전쟁


이들을 해방시키려는 북부와 영원한 종속을 원하는 남부의 첨예한 갈등은 결국 미국 내 내전인 남북전쟁을 불러왔다.



남북전쟁  <출처 : 위키피디아>



1852년에 발표된 헤리엇 비처 스토어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통해 노예제도의 폐단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것과, 링컨 대통령에 의한 1863년 노예제도 해방령은 사실상 극적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남북전쟁에서 북부의 승리로 미국의 노예제도는 폐지되었다.



노예해방 선언문  <출처 : 위키피디아>



자유와 함께 찾아온 인종차별


하지만 이들이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북부에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저임금의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어 단순 노동을 제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남부에서는 백인 중심의 비밀결사 단체인 KKK 단(Ku Klux Klan) 등에 의해 탄압과 가혹한 린치를 당했다.



1893년 텍사스주에서 십 대인 헨리 스미스에 대한 공개 린치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어려움 속에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인종차별은 보이지 않은 또 다른 노예제도였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력을 갖기 위해 진행된 ‘흑인대이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자립의 방향을 모색한 과정이었다.


스스로 쟁취한 자유와 평등


교육과 종교, 지역적 커뮤니티를 통한 교류를 통해 이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 냈다.



흑인대이동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영국의 식민지 이전부터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겪었던 비참한 노예생활을 이겨냈고 지유를 위한 피나는 노력을 이어왔다.


아울러 인종갈등을 넘어서 평등을 위한 외침은 오랜 시간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 오면서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의 차별적인 벽을 허무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 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 2세  <출처 : 위키피디아>



지금은 오마바 대통령 취임 이후 월등하게 성장한 자존감으로 당당하게 미국 사회의 한 축으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과 헌신, 미래를 위한 이들의 발걸음에 축복을 보내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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