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엽 Sep 16. 2024

저축대부조합 사태의 해결과 경제적 후유증

저축대부조합 09


1984년 5월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Continental Illinois Bank) 구제 사건 이후,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저축대부조합을 바라봤고, 결국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출처 : 위키피디아>



비록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로 덩치가 큰 은행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가 금융권을 구제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지만, 은행 내부 자체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도덕적 해이는 어찌할 수 없었다.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부실해진 은행의 자산이 점점 커지면서 손실은 늘어갔고, 이 손해를 메꾸려 더욱더 위험한 상품에 투자를 키워나가면서 위험성은  계속 자라났다. 결국, 정크본드에 투자한 막대한 돈은 투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손실로 한꺼번에 찾아왔다.



부시 대통령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여론도 이어 발을 맞춰 금융계 전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 시작했고, 연방정부도 부실 금융기관을 손보겠다고 마음을 굳히면서 일순간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다만 레이건 정부 시대가 아닌, 부시 대통령(George Herbert Walker Bush) 취임에 맞춰 진행하기로 정리되었다. 그는 1989년 3월 임기를 시작하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진행해 나갔다.




연방주택금융위원회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먼저 1989년 ‘금융기관 개혁, 구제 및 규제강화법(FIRREA)’에 이어 1991년 ‘연방예금보험공사법(FDICIA)’을 제정했는데 주요 목표는 부실 자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저축대부조합이었다.


규제 강화의 시작, FIRREA


약 4,000여 개가 넘는 저축대부조합을 실사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부실이 강한 저축대부조합을 정리할 별도의 기구까지 만들었다. 비로 ‘정리신탁공사(RTC : Resolution Trust Corporation)’였다.


FIRREA 법에 의해 생겨난 정부 기관이 진행한 것은 부실한 금융기관을 아예 시장에서 퇴출하키는 한편, 이들이 소유한 부채를 정부가 직접 떠안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대형 시중은행도 대다수 포함되었다.



RTC 문건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가장 먼저 금융감독기관인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구제할 은행과 퇴출할 은행을 구분하는 동시에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건전성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비록 부실 규모가 크더라도 금융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경우, 별도의 논의를 진행했다.


퇴출을 통한 자산 건전성 회복


이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공평성 및 일관성 유지'를 활용한 명확한 정리 비용 산출이었다. 자산의 매각과 관련된 정리 비용이 과도하게 산출될 경우, 아무리 건전성이 높다 해도 퇴출을 피할 수 없었다.



퇴출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1980년대 말부터 94년까지 약 1,560여 건의 부실 은행을 정리했고 이중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타 금융기관에 매각한 것이었다. 대략 1,200여 개로, 77%의 비율을 차지했다.


관용의 기준을 적용한 레이건 대통령 시대와 달리, 실제 구제금융을 투입해 살려낸 은행은 76건으로, 약 4.9%의 비율로 매우 미미했다.


정리신탁공사(RTC)의 저축대부조합 자산 정리


특히 저축대부조합을 맡은 정리신탁공사(RTC)는 퇴출당한 747개의 저축대부조합 내 장부에 잡혀있는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레이건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약 4,340억 달러의 자산 대부분 손실로 처리되어 있었고, 부동산 및 정크본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리신탁공사(RTC)는 막대한 규모의 자산을 떠안으면서 한때 최대 부동산을 소유한 국가 기관에 오르는 웃지 못할 일

상황도 발생했다.


약 6년여에 걸쳐 자산 매각에 성공한 정리신탁공사는 장부가 이하의 처분 건에 대해서는 미국 시민의 세금을 사용하기도 해,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매각 사례로 남게 되었다.      



미국 주택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여론에서는 세금의 사용에 대해 날카롭게 따져 물었고 결국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 부실 경영의 책임이 있는 은행가에게 집중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 금융인에 대한 실형 선고


앞서 언급한 '키팅파이브'의 주역인 찰스 키팅 2세를 포함하여 1989년 8월 이후 1995년까지 약 2,340여 명이 기소되었고, 이 중에서 2,100명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아울러 이들의 재산을 추징하였고 그 건수가 약 1,660여 건이 넘었으며, 당시 금액은 약 6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돈이었다.



찰스 키팅 2세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인들은 비록 자신의 세금이 투입되었지만, 금융시스템의 개선과 함께 죄를 지은 이들이 감옥에 가 벌을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경제 침체를 맞이했다.


1991년의 경제 침체


부실 저축대부조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금액은 1989년 미국 GDP의 약 7.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키우는 데 일조하였다.



연방정부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아울러 9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로 떨어지는 등 전체적인 고통을 모두 나누게 된 사건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홍보5) 최소한의 부의 세계사 서평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