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폰 재팬 인수와 일본 통신업계의 혁신

손정의, 소프트뱅크 제국의 창립자 3

by 한정엽


통신업계 진출의 야심 찬 계획


손정의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버블 붕괴 이후에도 미래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통신업계가 기존 대기업들의 독과점 구조로 인해 혁신이 정체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NTT 도코모와 KDDI가 시장을 양분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보더폰 재팬 인수를 통해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보더폰 재팬 인수 과정


2005년 말, 영국 보더폰 그룹은 일본 사업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철수를 검토하고 있었다. 보더폰 재팬은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서 3위 사업자였지만, 가입자 수는 약 1,500만 명으로 NTT 도코모(약 5,000만 명)와 KDDI(약 2,400만 명)에 크게 뒤처져 있었다. 아울러 일본 특유의 복잡한 통신 서비스와 휴대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손정의는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판단했다. 그는 보더폰 재팬이 보유한 인프라와 주파수 자원, 그리고 기존 가입자 기반을 활용하면 혁신적인 서비스로 시장을 뒤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특히 당시 일본 통신업계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업 관행에 젖어 있어, 과감한 혁신을 통해 차별화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인수 교섭과 최종 합의


2006년 초부터 보더폰 그룹과 본격적인 인수 교섭에 나섰다. 초기 제시 가격은 약 1조 5,000억 엔이었지만, 치열한 협상 끝에 최종 인수 가는 1조 7,500억 엔(약 150억 달러)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당시 일본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그는 다양한 금융 기법을 동원했다. 소프트뱅크 지분 담보 대출, 은행 신디케이트 론, 그리고 일부 자기 자본을 조합하여 필요 자금을 확보했는데, 특히 소프트뱅크 주식 가치 상승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과감한 레버리지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인수 완료와 소프트뱅크 모바일 출범


드디어 2006년 4월, 보더폰 재팬 인수가 최종 완료되었다. 손정의는 즉시 사명을 '소프트뱅크 모바일'로 변경하고, 기존 보더폰의 기업 문화와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했다. 곧바로 "일본 통신업계에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소프트뱅크 모바일 출범 직후, 기존 통신업계 관행을 뒤엎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도입했다. '화이트 플랜'이라는 명칭의 새로운 요금제는 기본료 월 980엔으로 시작해, 소프트뱅크 사용자 간 통화는 오후 9시부터 오전 1시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이는 당시 일본 이동통신 업계의 일반적인 요금 수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또한 그는 '가족 할인'과 '학생 할인' 등 다양한 할인 정책을 통해 젊은 층과 가족 단위 고객 유치에 집중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은 기존 통신사들로 하여금 요금 인하 경쟁을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일본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을 크게 줄였다.


마케팅 혁신과 브랜드 이미지 변화


손정의는 통신업계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아버지 역할의 흰색 개 '오토상'이 등장하는 광고 시리즈는 일본 전역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광고는 기존 통신업계 광고의 기술적, 전문적 어필과는 완전히 다른 감성적 접근을 통해 브랜드 친밀도를 높였다.


아울러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서는 파격적인 행보도 보였다. CEO가 직접 광고에 출연하여 회사의 철학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것은 당시 일본 기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소프트뱅크 모바일을 단순한 통신사가 아닌 '혁신적이고 친근한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애플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2007년 애플이 첫 아이폰을 발표했을 때, 손정의는 즉시 이 혁신적인 기기가 통신업계 전체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직접 만나 일본 내 아이폰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NTT 도코모와 KDDI도 아이폰 도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애플의 까다로운 조건과 기존 일본 휴대폰 생태계와의 충돌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손정의는 애플의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일본 시장 특성에 맞는 서비스 모델을 제안했다. 특히 아이폰의 높은 기기 가격을 통신요금과 연계한 할부 시스템으로 해결하고, 무료 Wi-Fi 서비스를 확대하여 데이터 사용량 증가에 대비했다.


2008년 아이폰 3G 일본 출시


2008년 7월 11일, 소프트뱅크 모바일은 일본에서 아이폰 3G를 공식 출시했다. 이는 일본 스마트폰 시장의 시작점이 되었는데, 아이폰 출시와 함께 '아이폰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요금제'를 발표했다. 기존 일본 휴대폰의 복잡한 요금 체계와 달리, 아이폰 요금제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출시 첫 주에 아이폰 3G는 10만 대 이상 판매되었고, 소프트뱅크 매장 앞에는 연일 긴 줄이 이어졌다. 이는 일본 휴대폰 시장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기존 일본 휴대폰들이 복잡한 기능과 화려한 디자인을 강조했다면, 아이폰은 직관적인 사용성과 혁신적인 앱 생태계로 차별화되었다.


아이폰 도입 이후 단순히 기기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한 스마트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전국 주요 지역에 무료 Wi-Fi 핫스팟을 설치하여 '소프트뱅크 Wi-Fi'라는 브랜드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아이폰 사용자들이 대용량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앱스토어와 연계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소프트뱅크 전용 앱들을 통해 요금 조회, 고객 서비스, 그리고 각종 부가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이탈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3G 네트워크 고도화와 4G LTE 조기 도입


아이폰 도입과 함께 급격히 증가한 데이터 트래픽에 대응하기 위해 손정의는 대규모 네트워크 투자를 단행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약 1조 5,000억 엔을 네트워크 인프라 개선에 투자했는데, 도심 지역의 기지국 밀도를 높이고, 지하철과 건물 내부까지 안정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손정의는 기존 일본 통신업계의 관습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접근을 보였다. 예를 들어, 기지국 설치 시 미적 고려사항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시했고, 기존 건물과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했다.


2012년 손정의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4G LTE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이는 NTT 도코모보다 3개월, KDDI보다 6개월 빠른 것이었다. 그는 "항상 한 발 앞서 나가야 한다"며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LTE 도입을 위해 그는 기존 3G 주파수를 재편하고, 새로운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상했다. 또한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최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일본 통신업계에 미친 영향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진출은 일본 통신업계의 기존 질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006년 인수 당시 15%였던 시장 점유율은 2012년에는 25%까지 상승했다. 이는 기존 1, 2위 사업자인 NTT 도코모와 KDDI의 독점적 지위에 균열을 가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소프트뱅크의 인기는 더욱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 고객층에서 소프트뱅크의 점유율은 30%를 넘어섰고, 이는 미래 고객 기반 확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손정의의 공격적인 요금 정책은 일본 전체 통신업계에 가격 경쟁을 촉발시켰다. NTT 도코모와 KDDI도 더 이상 높은 요금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2006년 대비 2012년 평균 휴대폰 요금은 약 30% 하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통신비 절감으로 인한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는 다른 소비 부문으로 이어졌고, 특히 젊은 층의 소비 패턴 변화에 기여했다.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은 다른 통신사들도 따라 하게 만들었다. 고객 중심의 마케팅, 단순하고 투명한 요금 체계, 그리고 적극적인 신기술 도입 등이 업계 표준이 되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일본 통신업계의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스마트폰 생태계 활성화


아이폰 도입으로 시작된 일본의 스마트폰 혁명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앱 개발, 모바일 게임,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일본의 전통적인 콘텐츠 산업(게임, 애니메이션, 음악)이 모바일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의 모바일 앱 시장 규모는 연평균 40% 이상 성장했고, 이는 수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특히 젊은 개발자들과 창업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손정의의 혁신은 일본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온라인 쇼핑, 모바일 결제, 소셜 미디어 사용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는 일본의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디지털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스마트폰을 통한 디지털 서비스 접근성이 향상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은행업무, 행정서비스, 의료 서비스 등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사회 전반의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단기적 손실과 장기적 수익


보더폰 재팬 인수 초기에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이는 소프트뱅크 그룹 전체의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2009년부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아이폰 효과로 인한 가입자 증가와 데이터 매출 확대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2010년에는 영업흑자로 전환했고, 2012년에는 인수 이후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보더폰 재팬 인수와 그 후의 혁신적인 경영은 소프트뱅크 그룹의 기업 가치를 크게 상승시켰다. 2006년 인수 당시 소프트뱅크 주가는 약 2,000엔 수준이었지만, 2012년에는 3,000엔을 넘어섰다. 이는 손정의의 투자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특히 통신업계 진출로 인해 소프트뱅크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향후 다른 사업 분야로의 확장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손정의는 이후 이 자금을 바탕으로 스프린트 인수, 알리바바 투자 등 더 큰 규모의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다.


일본 통신업계의 게임 체인저


손정의의 보더폰 재팬 인수와 그 후의 혁신적인 경영은 일본 통신업계와 경제 전반에 깊이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단순히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넘어서, 일본 특유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통신업계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공격적인 요금 정책, 혁신적인 마케팅, 그리고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그는 일본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 특히 아이폰 도입을 통해 일본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했고, 이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 형성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비록 초기에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손정의의 미래 지향적 비전과 과감한 실행력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의 성공은 일본 경제에 혁신과 경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고,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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