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이팔청춘

by 용팔

“니봐”

박반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내민다.

“네? 뒤를 보라구요?”

문을 고치다말고 뜬구름 없이 하는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본다.

“니빠!”

이번엔 나를 쳐다보고 소리친다.

나도 되받아 친다.

“니봐가 어딘데요? 어딜 보라구하는 건데요.”

박반장은 한심한 듯 공구함을 휙 가로채 뒤적이더니 뺀지 비슷한 뭔가를 하나 꺼낸다.

“이게 니빠라구 하는 거여” 내 얼굴 앞에 대고 천천히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잘하면 콧구멍에라도 넣을 기세다.

“아니 그냥 뺀지 달라구 하면 되지 니빠라구 하니까 내가 뭔지 모르잖아요.” 나도 지지 않고 대든다. 박반장은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다시 공구함 속에 손을 넣어 진짜 뺀지를 꺼내 내 눈앞에 들이댄다.

“이게 뺀지구 이게 니빠야.” 손을 번갈아 올리며 보여준다.

“공구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어야 내가 달라구하는거 줄 거 아니야. 공고(工高) 나왔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땐 그런 거 쓰지 않아서 잘 몰라요.”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조수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 포기하고 내 사수는 화장실 문을 고치기 시작한다.


백수생활이 길게 이어졌다. 17년을 다닌 회사를 나와 장사를 하겠다고 하자 볼펜만 굴리던 놈이 무슨 장사냐는 소리들 뿐이었다. 고집을 꺾지 않고 시작한 가게는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장사를 접고 일정한 직업 없이 지인의 일을 도와주다 보니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결국 다시 재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미 만만하게 보던 시절은 한참 지난 뒤였다. 대기업에서 쌓은 오랜 경력으로 중소기업쯤은 어딜 지원해도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했지만 깜깜한 무소식에 내 이력서는 늘 난지도 어디쯤에 버려진 것 같았다. 오랜 백수생활이 가져다준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계의 부담이었다. 푼돈으로 요긴하게 쓰던 주식마저 다 팔아먹고 나자 자금줄이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 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들의 핸드폰 번호를 누른다고 것도 내키는 짓은 아니었다.

“지난번 당신 친구 남편이 소개해주겠다는 건물 시설관리하는 덴가 뭔가 거기 소개 좀 시켜달라구 그래.”

결국 아내의 성화를 못 이기는 척 슬쩍 찔러보았다. 편한 일에만 매달리려고 하는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는 친구에게 부탁해 일자리 하나를 구해 왔었다. 막일 판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저러고 있는 꼴을 보기 싫어 자기가 찾아 나섰는데 내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버티다 먼저 말을 꺼내자 웬일인가 싶듯 아내는 한참을 쳐다본다.


출근 첫날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력서를 보는 건물 관리소장과 대면한 자리에서도 나는 크게 기죽거나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소개로 왔으니 쉽게 거부하거나 내치지는 못할 일이었다. 소위 말하는 뒷백의 위력이었다.

“이런 일 안 해봤으면 좀 힘들 텐데... 아니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지낸 분이 이런데 뭐하러 오셨데..그렇다고 자격증이라도 있는 게 아니고...”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머...경력이 중요한가요? 부딪치면서 배우는거죠. 제가 또 공고를 나와서 이 분야가 아주 젬병은 아닙니다.” 실실 웃으며 대하는 내 얼굴 두께를 확인했는지 소장은 어쩔 수 없는 듯 한발 물러선다.

“뭐 그래도 컴퓨터는 잘하신다니까 행정적인 업무엔 좀 도움을 줄 수 있겠네.”

영선반이란 곳에 배치를 받았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집안 수리 정도 할 수 있는 능력이면 일단은 버틸 수 있는 데였다. 그곳의 터줏대감이자 내 사수인 박반장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여기에 뼈를 묻고 나갈 요량으로 일하는 베테랑이었다. 첫인사를 주고받는 그의 정수리 주변은 허옇게 변해 그 영토를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머릿이들이 매복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고 얼굴은 어딘지 망치와 뺀지를 닮아 있었다. 박반장에게도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신참이자 조수였다. 기대했던 쫄다구가 아니니 대하는 말투에 다정함이 묻어날 리가 만무했다.

“니봐”

“네? 뒤를 보라구요?”

첫날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었다.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일을 경험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웬만한 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올라있다. 대기업에 몸담았을 때 받은 업무의 중압감도 없고 그저 내 일만 충실하면 스트레스받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경력만 고집했는지. 처음 시작할 무렵엔 다른 일 찾을 때까지 임시로 하는 걸로 생각한 터라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갈등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레 손에 쥐어진 공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놀랄 때도 많다. 그때가 후회스러울 뿐이다. 박반장은 여전히 뼈를 묻고 있다. 나는 니빠가 아니라 니퍼ㅡ니빠는 영어 니퍼(nipper)의 일본식 발음이다ㅡ라고 해야 맞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다닌다. 즐겁다 일이. 나의 두 번째 이팔청춘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