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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Mar 21. 2021

아~날로 즐겨서 좋았던 아날로그

천장에서 새는 비는 4D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구글 이미지>


어릴 적 동네 극장에는 두 줄기 비가 내렸다.

장마철이 되면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허름한 천정에서 떨어지는 비가 그 하나였다. 극장 건물만큼 고물이 다된 영사기 속에서 도는 기스난 필름이 스크린에 리는 빗줄기가 또 다른 하나였다. 거기에 더해져 속에서 펼쳐지는 결투장면이라도 나온다면 그야말로 극장은 홍수가 돼버린다. 푹푹 찌는 찜통 안에서 에어컨은 이름도 못 듣던 때라 아아스케키의 시원함은 먹자마자 이미 수명을 다했으니 시작전 반은 탈진한 상태로 영화를 관람하는 셈이다.  관객들이 뿜어내는 찌든 내, 퀴퀴한 내, 온갖 잡내는 끝날 때까지 옷 한번 안 갈아입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풍겼을 법한 체취를 맡고 있는 것처럼 리얼하게 느껴졌다.

영화관람 후 코스가 되버린 중국집은 방금 보고 온 무협영화의 잔상들로 마치 내가  한 장면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악당들이 시비를 걸면 한 방ㅡ주로 젓가락이 날아다닌다ㅡ에 물리친 다음 아무일 없는 듯 다시 먹는 멋진 모습으로.

그렇게 나는 요즘 영화관에서 즐기는 4D 기술을 70년대에 이미 체험하고 있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세계에서. 아날로그의 디지털화라고나 할까?


아날로그가 그리운 건 디지털에 비해 심리적 정서가 깊다거나 레트로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감 때문이다. (인화된) 사진은 그 진실의 영역을 정직하게 들어내는 가장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였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을 회상할 때 가장 선명하게 그 시절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상징물이다.

영화분석의 단골메뉴인 SF걸작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아날로그 장면은 자신이 리플리컨트(복제인간)일지 모를 사진에 집착하는 부분이다. 과거를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사진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간’ 이라는 사실의 증거물이다. (2017년작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선 그 기억마저 진짜가 아닌 심어진 것으로 설정된다.) 사람조차 복제 가능한 세상에서 그들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자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도구ㅡ영화에선 사진도 진실여부가 의심되지만 그냥 사진의 역할만 생각하자ㅡ이다. 만들어진 허상이 아닌 보여지는 그대로의 이미지. 존재 대상의 사실성, 아날로그의 Reality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현실을 대변하는 복제품은 회화였다. 비록 완벽함은 아니었지만 그림으로 재탄생한 자연과 사물의 모습은 재현을 거쳐 해석으로 발전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달랐고 서로의 견해가 충돌했다. 그것은 획일화 되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이었다는 의미이면서도, 실제와는 다른 상상의 이미지라는 한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회화가 인간적인 감정으로 사물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루이 다케르가 완성한 은판사진술이 1839년 발표되자 화가 들라로슈는 이렇게 외쳤다.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


사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구글  이미지>


사물과 자연을 감정의 주관성으로 묘사한 회화가 사진의 등장으로 그 시각을 객관적으로 넓히게 되었고 이후 디지털 혁신이 일어나기까지 아날로그 사진기는 우리 삶을 그림이 아닌 비주얼로 충실히 재현하게 된다. 아날로그 사진이 발명된 지 130여 년이 지난 후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오늘로 필름은 죽었다”고 외쳤는지 알 수 없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카메라에 자리를 내준 필름카메라는 대중화와는 조금씩 멀어져가고 이제는 좀 더 예술적인 영역의 표현 장치로 옮겨가고 있다.

디지털 사진기는 아날로그 이미지를 넘어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사실 필름 사진도 기계적 이미지다. 카메라가 만들어낸 현실 복제. 때문에 디지털카메라가 생산해내는 이미지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아날로그적 기계복제에 대해 더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처음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질이라서 화질이 개선되기만 하면 디지털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더 이상 가족 앨범은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어요. 손으로 만지거나 흔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지요.“             

             - 데이비스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


잉크 냄새, 바스락거리며 책장 넘기는 소리, 손가락에 느껴지는 촉감 같은 친숙한 경험과 욕망을 자극하는 정서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아날로그에 있다면 디지털은 즉물적인 것보다는 완벽함과 속도에 관한 영역이다. 객관적인 편리성과 동시에 건조한 메커니즘, 진짜가 아니라는 실체 없는 허상과 함께 몰인간성을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디지털은 현실이 아니다. 기계라는 도구로 현실를 사는데 좀 더 편리한 방법일 뿐이다.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에 길들어진 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제럴드 잘트먼은 인간의 욕구가 이성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은 5% 남짓이며 나머지 95%의 욕구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95% 법칙’을 이야기했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과거 기억이나 익숙한 감정에 휩쓸려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끌리는 걸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논리다. 내재해 있는 친숙한 경험이 낯선 것보다 더 욕망하는, 만지고 보고 느끼는 무한의 감정들이 일어나는 정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아날로그 영역에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란 지나간 익숙함에 대한 향수, 좀 더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를 가로지르는 정서 내지는 공감.

포스트디지털시대를 살아가게 될 세대도 같은 이유로 현 시대ㅡ미래에선 과거가 될ㅡ를 동경하며 아쉬워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핸드폰을 쓰면서 전화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아날로그의 불완전하고 불편함을 자극하는 오감, 그런 잊혀진 매력 대한 회고일 뿐이다.


“나는 오디오와 휴대전화를 껐다.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오직 바람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 <아날로그의 반격> 마지막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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