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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May 09. 2021

아들의 독립선언

"자주 연락해라!“

팔순을 한참 전에 넘기신 노모의 부탁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20여 년 전 한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시던 날 남기신 말씀. 지금도 통화 저편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흘러나온다. 하기야 같은 하늘 아래 사시던 시절에도 아니 그러셨던가? 지척의 거리였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연락도 늘 후 순위에 밀려 있었다. 그나마도 이제 공간도 시간도 아주 다른 차원이다 보니 더욱 벌어진 느낌이었다.

간혹 늦은 안부를 여쭈며 피곤해하는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 목소리엔 안쓰러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소식이 뜸하면 당신들 역시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면서도 뭔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먼저 수화기를 드신다.   

"자주 좀 연락해라. 너희 연락이 없으면 아버지가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고 걱정하신다."

힘들게 사는 다 큰 자식에게 일일이 잔소리하기도 미안한 노릇이라 섭섭함을 에둘러 표현하신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드린 거지."

가까이 계실 때가 멀리 계실 때나, 그때나 지금이나 딱 이 두 마디가 부모와 자식 간에 나눈 대화의 진도였다. 누구누구 부음 소식으로 마음이 내려가지 않거나 장례식장이라도 다녀오는 날 때쯤 돼야 안부 전화 한 번 더 드리는 것으로 응당 소임을 다한 듯 넘어간다. 그 후로는 다시 잊고 지나치는 날이 넘쳐 달력을 한 장 찢고서야 연락을 드리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하시겠지 라고 아예 소식 전달 주체를 넘겨버리고, 그 무슨 일이 진짜 생겨 연락하는 (미국에 사는) 형제들에게 왜 진작하지 않았느냐고 한소리 하는 걸로 면피가 두꺼워진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 데다 뵐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시간에 바질 하면서도 그저 서슴고 있을 뿐이다.

그리해서 이제 와 뒤늦게나마 후회와 참회로 이제부터라도 자주 연락을 드리자는 뭐 이런 훈훈한 교훈적 결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꺼낸 얘기가 아니다.

 

큰아들 녀석이 집을 나갔다.

정확히는 가출이 아니라 독립이었다. 이제 자기도 나가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유였다. 너무 오래 엄마, 아버지와 살았다고 하더니 휘리릭 집을 떠난 것이다. 녀석의 낌새를 모르고 있던 바는 아니었다. 혼자 살 나이가 됐다고,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떠들던 게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느긋한 녀석 성격을 알고 있는 우리 부부는 쉽게 결정하지 못할 거라고, 그저 빈말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터였다.

"자식이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실천을 해야지, 실천을." 직접 얘기는 못 하고 녀석 때문에 못마땅할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아내와 하는 넋두리였다. 그 말을 들었는지 작심 삼 년 만에 드디어 행동에 옮긴 것이다.

살 집을 구하고 가구와 식기를 장만하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더니 홀연히 떠난다는 거다. 그렇게 들떠있는 녀석과는 다르게 아내는 하루하루 풀이 죽어갔다. 아내 안색이 눈에 띄게 야위어 가는 걸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한다.

"왜 그래? 언제는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니만."

"그렇긴 한데...막상 내보내려구 하니 마음이 짠하네. 처음으로 자식 내보내는 건데. 제대로 먹구나 다닐지..."

쌓아 올려 묵힌 모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심정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짐을 다 옮기고 집 현관을 나서는 날, 아들을 꼭 안아주는 아내의 두 눈가는 흐릿했다. 한마디를 거들어 줘야 하는 나도 머릿속에서 뭐라고 해주지? 성경 말씀을 전할까? 아니 그냥 아버지로서 한마디 훈시를 해줄까?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다 결국 툭 나온 한마디는 이거였다.


"자주 연락해라."

"뭐...... 그렇게 자주 하진 말고 한 열흘에 한 번 정도 해."

 마음에도 없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그런 부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저 갈게요"라는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닫힌 현관문을 한동안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아쉬움에 베란다로 나간다. 저만치 가고 있는 녀석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녀왔습니다."라며 매일 퇴근 후 들어오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자주 연락해라, 자주... 라는 말이 읊조리듯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가 싶더니만 결국 침묵을 깨는 한마디가 아내에게 불평하듯 날아갔다.

"아~~씨! 괜히 열흘마다 연락하라고 했나? 너무 긴 거 아냐? 매주 하라고 할 걸 잘못했나? 안 되겠어! 다시 얘기해야지. 자주 연락을 해야 부모가 걱정을 안하지. 안 그래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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