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변비가 심해진 모양이었다.
수시로 화장실을 드나든다.
밤 12시에도 간다.
남들이 꿈나라나 이불 속에 들어가 있을 때도 아내는 변기에 들어 앉아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방 화장실 문 넘어 앉아있을 아내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5분 앉아있으면 3분이 방귀소리다.
생산성(?)없는 중노동의 연속이다.
변죽만 울리다 끝나고 마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는 정 반대다.
신문기사 하나도 다 읽지 못하고 볼일을 끝낸다.
그래서 아내의 그 고통을 잘 알지 못한다.
부부라면 당연히 어떤 어려움도 나눠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악의 근원을 시원하게 뚫어 줄 능력이 내겐 없다.
“형부는 언니하고 방구를 터요?”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처제가 집에 몇 칠 간 묵던 어느 날 뜬금없이 물어왔다.
튼게 다 뭐여 언니의 방구 때문에 우리 침대에 DMZ가 설치 된 게 언젠데... 라고 얘길 하려다 그래도 동생 앞에서 언니를 흉보는 것은 아니다 싶어,
“으~응. 그럼. 몇 년을 살았는데... 우린 마주보고 방구 끼는걸.”라고 얼버무렸다.
무슨 엽기부부라도 보듯 처제는 내 얼굴을 쳐다보다 못 할 말을 하는 것처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얘들 아빠랑 십 오년을 살아도 아직도 방구를 못트고 있어요.”
또 다른 차원의 부부인지, 아니면 해외에 오래 머물면서 익힌 슬기로운 서양생활인지 이번엔 내가 처제 얼굴을 한참 쳐다본다. 그렇군, 처제가 형부 앞에서 하구 많은 얘기 중에 하필 민망한 방귀 얘길 꺼낸걸 보면 며칠 간 언니랑 동침을 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처제가 떠난 몇 칠 후 용기를 얻어 아내한테 말을 꺼냈다.
“우리도 이제부터 방구 트지 말자구."
빨래를 개고 있던 아내는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투로 한마디 툭 던진다.
"왜, 30년 넘게 마누라 방구소리 들으니 이제 지겨워?"
나는 움찔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처제 네는 아직도 방구를 안 트고 산데."
“개 네는 부부가 아닌 모양이지.”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에 기선을 제압당한 나는 잠시 당황하다 전세를 가다듬고 반격을 시작했다.
“내가 손해잖아. 내가 한 대 끼면 당신은 다섯 번, 여섯 번 껴대니. 사랑으로 흡수해주긴 이제 너무 버거어.”
“억울하면 당신도 그렇게 껴.”
표정하나 안 바뀌고 말하는 아내가 섬뜩해진다.
“아니 방구가 무슨 대포도 아니구 준비해서 쏜다구 나오는 게 아니잖아. 그러다 딴 거 나오면 어쩌라구.“ 절규하듯 나오는 내 말에 아내는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터진 아내의 결정타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래? 그럼 보리밥 많이 해줄게.”
가출하듯 집을 뛰쳐나왔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라는 말처럼 방귀가 우리 집안의 불행(?)이 될 줄은 몰랐다.
동네를 걸으며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있는 사이 멀리서 앰브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 내 머리를 때리는 그 무엇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아~ 맞아, 그랬었지!!'
문득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던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10여년 전 아내는 대장암 선고를 받고 결국 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대수술과 항암치료의 고통을 견뎌냈다. 옆에서 힘겹게 바라보던 나는 아내가 완치 판정을 받던 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아내의 소화기능은 정상적인 작동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변비는 그 기억을 되살려내는 잔인한 시간일지 모른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내의 그 힘들었던 시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편으로써 그 고통을 왜 보듬어주지 않았던가. 그깟 방귀 좀 크게 끼었다고 청각이 손상되어 가청주파수가 반으로 줄 리 없을 것이고, 방귀 냄새가 아무리 지독하다고 중동 어디서 터진 화학가스도 아닌 이상 아무리 들이마셔도 내가 먼저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부를 일 또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부가 갈등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흔한 성격 차이도 아니도 고작 방귀 차이로 아내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못난 남편이란 말인가.
그래 그냥 미안했다고 말하자. 아니 내가 해선 안 될 소리를 했다고 용서를 빌자. 다시는 방귀 얘긴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자.
나올 때 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를 다정하게 부른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의 뒤로 가 살포시 허리를 감싸 안고는
“여~~보. 미안해. 내가 그만 못할 소리를....”
순간 힘 좋은 소리가 내 말을 말아 먹는다.
“뿌~~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