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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Apr 18. 2021

핸드폰 작사  마누라 작곡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먼저 타고 온 버스에서 사라진 듯 했다. 비가 오는 탓에 부산하게 움직이다보니 빠지거나 누군가 슬쩍한 게 아닌가 싶었다. 늘 백팩 옆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터라 분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음에도 습관처럼 그 자리에 꽂고 다닌 것이 결국 화근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아무나 붙잡고 핸드폰 좀 빌려 바로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핸드폰으로 별 짓을 다하는 요즘 세상에 쉽게 내 줄 리가 만무했다. 믿음의 힘을 빌어 차분하게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제 핸드폰 꼭 찾게 해주세요! 절대 악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이왕이면 남자가 아닌 여성의 손에 있게 하심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동료의 핸드폰을 누른다.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리지만 반응이 없다.

혹시 길거리에 떨어진 건 아닐까? 오늘같이 비도 오는데 고장 날 텐데.. 여전히 신호음만 길게 넘어가고 있다. 한두번 더 울리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기세다.

(전화 좀 받아라, 제발! 좀)

더욱 초조해진다.

(어떤 못된 놈이 핸드폰으로 용돈 좀 벌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냐?)

오면서 드린 기도는 이미 세속적인 육두문자에 묻혀버리고 다중인격장애의 전조 증상이 나타날 찰나,

    

“여보세요!”

침묵을 깨고 저편 넘어 들려오는 맑고 우아한 여성의 목소리.     


‘OK! 됐어!’

뇌파를 자극하는 그 음성에 나갔던 이성적 싸가지가 곧바로 되돌아오고 안도와 함께 기대감(?)으로 쾌재를 부른다. 순간적으로 알파고보다 더 빠르게 머리가 굴러간다.

(핸드폰을 돌려 줄 거니 사례는 해야 되겠지. 굳이 사양한다면 뭐.. 차 한 잔이나 하면서 얘기를 나누든가...하면 되잖아.) 마치 일부러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여성이 주으면 어떻게 수작이라도 한번 걸어보려는 작업남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여보세요!”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들려오는 두 번째로 울리는 그 청아한 목소리는 벌써 예전에 들어본 친숙함 마저 든다. 나는 전혀 당황하거나 들뜬 내색 없이 삼겹살의 기름이라도 목에 낀 저질스런 톤을 흘린다.   

  

“네.. 저 핸드폰 주인인데요.....”

순간치고 들어오는 세 번째 저편의 목소리    


“여보 나야, 왜 핸드폰은 안 가지고 갔어?”

심하게 친숙한 음성에 정신이 바싹 든다.    


“아....핸드폰이 집에 있었구나. 난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당황했는지(아내 음성에 당황한 게 아니고?).....”

얼떨결에 얼버무린다.     


“아침부터 마누라 목소리가 그리 듣고 싶어서 일부러 안 갖고 갔지?”

나의 다소 멋쩍은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미있는 듯 아내의 목소리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응? 으...응.... 그래..”

난 어정쩡한 대답을 하고 뭔가 은밀한 걸 들킨 사람처럼 얼른 통화를 마무리 하려 애쓴다.

그렇게 이 아침 핸드폰의 부재가 만든 짧은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더 진행되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집에 놓고 오신 거예요? 다행이네요”

핸드폰을 빌려준 회사 동료의 한마디에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멋쩍은 웃음으로 대꾸한다.    

“허허.. 그러게, 다행이네. 불행(?) 중 다행이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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