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의 끝, 또 다른 시작
사랑 이야기는 보통 만남과 시작에서 끝난다.
첫 눈에 반한 순간, 설레는 데이트, 그리고 결혼. 그러나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Before Midnight〉은 이 '이후의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두 작품은 말한다.
“사랑은 기술이고, 훈련이며, 끝없는 대화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자이면서 소설가답게, 이야기와 사유를 동시에 풀어낸다. 소설 속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은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상의 부부가 된다. 부부가 된 뒤 처음의 열정은 사라지고, 권태와 오해가 찾아온다.
함께할 때 행복했던 그 시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혼자가 편해지는 시기가 온다. 육아가 더 이상 즐겁지 않고 버거움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외도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라비와 커스틴은 균열의 순간을 맞이한다.
알랭 드 보통은 결혼을 '영원한 감정의 약속'이 아니라 '사랑을 훈련하는 장(場)'으로 본다. 사랑은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대화와 타협,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배워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낭만을 소비했지만, 사랑을 살아내는 기술은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이 책에서 좋아하는 글귀가 무어냐고 물으면, 난 아래의 문장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나는 남편과 살아오며 육아관, 가치관, 삶의 우선순위를 비롯한 수많은 부분에서 '다름'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냥 밉고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어느 순간'이란 건 남편을 어른이 아닌 '어린애'로 보았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다 큰 어른의 외양이 아닌 남편 안의 '어린애' 같은 면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아. 당신도 몸만 컸지, 마음속에는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린애가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해하고 넘어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되었고, 그것이 남편을 조금 더 이해하는 길이 되었다.
<Before Midnight〉은 <Before Sunrise>, <Before Sunset>으로 이어진 3부작의 마지막이다. 20년 전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제시와 셀린은 이제 부부가 되어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다. 아테네에서 휴가를 보내는 그들은 아이들, 커리어, 타협,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불만을 놓고 끝없는 대화를 나눈다.
이 영화는 로맨틱한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결혼생활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지겹게 반복되는 말싸움. 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서로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사랑일까?》와 〈Before Midnight〉은 모두 “사랑 이후”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다. 두 작품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내려는 의지와 기술의 문제라는 것.
라비와 커스틴, 제시와 셀린은 모두 격렬하게 부딪히지만 그 싸움조차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자체가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이를 키워나가며 남편과 부딪히는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게 진짜 사랑일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떠올렸다. 그 질문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할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크고 작은 다툼조차도 결국은 관계의 또 다른 언어가 아닐까?
첫사랑의 설렘은 누구나 기억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그 설렘이 사라진 뒤에 시작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사랑일까?》와 〈Before Midnight〉은 로맨스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사랑을 배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