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사랑과 상실
어떤 사랑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짧았다고 해서 그 사랑이 덜 중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의 강렬함은 평생을 흔드는 기억으로 남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은 이 같은 청춘의 사랑과 상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첫사랑의 무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대학생 와타나베가 친구의 죽음 이후 겪는 방황과 사랑을 그린다. 1960년대 말 고도성장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생생한 청춘의 순간을 그려냈고, 36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되며 이른바 '하루키 붐'을 일으킨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늘 함께였다. 그러나 기즈키가 자살하면서 세 사람 사이의 행복이 깨져버린다. 도쿄의 한 사립대학에 진학해 고향을 떠나게 된 와타나베, 그리고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던 중 나오코와 한동안 연락이 끊기게 되고,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가게 되고 점차 나오코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한편 와타나베의 인생에 '미도리'라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게 된다. 같은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는 나오코와 달리 발랄하고 생기가 넘친다. 와타나베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나오코와의 관계는 애틋하지만 불안정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고, 사랑은 와타나베를 치유하기보다 더 깊은 고독으로 이끈다. 반면 미도리와의 만남은 현실적이고 활기차다. 그녀는 삶의 생생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은, 결국 “사랑은 구원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곰?" 미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뭔데, 봄날의 곰이?"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정말로 멋져."
"그 정도로 네가 좋아."
-《노르웨이의 숲》 中
198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여느 해와 같이 지루한 여름 휴가를 보내던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 위해 찾아온 손님 올리버에게 첫눈에 끌린다. 매 순간, 모든 감각이 올리버에게 향하는 것을 깨달은 엘리오는 처음으로 마주한 알 수 없는 감정에 한없이 빠져든다.
영화는 엘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엘리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시선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엘리오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르치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리버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처음에는 올리버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지만 결국은 애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백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짧지만 뜨겁고 진실한 사랑을 나눈다. 이성 관계가 아닌 동성의 관계. 이렇듯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의 틀을 벗어난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처럼 빛난다.
영화는 계절의 풍경, 음악, 몸짓을 통해 첫사랑의 찬란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담아낸다. 마지막 장면, 벽난로 앞에 앉아 눈물 흘리는 엘리오의 얼굴은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랑이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Call Me by Your Name〉 中
《노르웨이의 숲》과 〈Call Me by Your Name〉은 모두 청춘의 사랑과 상실을 다룬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상실을 통해 성장하고, 아픔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와타나베가 겪은 고독, 엘리오가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우리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만든다.
첫사랑은 종종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그 실패는 삶 전체를 물들이는 배경이 된다. 《노르웨이의 숲》과 〈Call Me by Your Name〉은 사랑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때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