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열등감을 언제 느껴보았냐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4년 반 정도 다녔던 나의 첫 직장이었다.
2년 차 사원이었을 때 나와 동갑인 여자 사원이 입사하게 되었는데사회에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친구여서인지 마음을 여는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은 매번 누구와 같이 먹을지, 어느 상사와 부서에 가서 같이 먹자고 해야 할지이런 고민도 서서히 지워지고,
이 친구와 함께 점심을 같이 먹고, 남는 시간은 근처에서 카페인 수혈을 하며 서로 조금이나마 빡빡한 사회생활에 의지를 쌓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린 서로 고마운 부분도 두터워졌고 마음속에서 의지하는 의지 치도 커져 있었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냉정하게 사람을 매년 평가해야 하고, 나와 그 친구 또한 평가의 줄다리기에서 위태롭게 균형도 없이 서있어야 했다.
인사평가 종료 후 승진과 부서 이동 발표가 있던 날, 그 친구는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이 되었다는 명단을 발견했었다. 축하의 마음과 동시에 1초도 안되어 당연히 나도 있겠지 싶은 근자감에 잠시나마 명단을 씩씩하게 훑어보았다. 발표 명단에 내 이름은 눈을 비비고 보아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티 내지 않았지만 내 눈은 이미 명단 처음부터 끝에 위아래를 왔다 갔다 거리며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을 불안한 마음과 눈길로 명단 처음과 끝을 여러 번 읽어내렸던 나는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스스로 낯빛이 좋지 않았던 것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그 낯빛을 본 것인지, 아님 나의 이런 모습이 당연할 거라고 우려했던 탓일지, 당시 인사부 대리는 초점 없는 잿빛의 나를 회의실에 불러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이유에 대해 회사 입장으로서 냉정하고, 차분하고, 고른 톤으로 설명해 주었다. 평소 나를 잘 대해주던 인사부 대리도 본인의 입장이 아닌 회사의 인사부 대리 입장으로서 마음 다잡고 나를 냉정하게 대하느라 마음속으로는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타적인 배려까지 그때는 감싸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마음의 자비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설명이 끝난 후에 내 마음이 행여나 속상할까 봐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흐가 내게 와서 마음이 정화되는 그림을 눈앞에서 그려준다 해도, 소프라노 조수미가 내게 머리까지 울리는 한 곡의 노래를 해준다고 해도, 전라남도 음식의 대가 명인이 찾아와서 내게 12첩 반상을 당장 차려 준다 해도, 어떤 것도 들리지도 먹히지도, 위로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마음이 아파트 5층에서 1층으로 쿵 내려앉는듯한 속상함으로 채워지기만 했었다.
승진의 이유인즉슨 2년제 대졸 경우 4년 차 입사가 돼야 주임이 될 수 있는 회사의 진급 룰 때문에
나는 2년을 더 다녀야 하고, 4년제 대졸 경우 2년 차 입사가 되면 주임으로 자동 승진 대상이 되기에
동갑내기 친구는 주임으로 승진이 된 것이라 말했다.
동갑내기 친구보다 먼저 입사했고, 회사를 매일같이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열심히 다녔고, 열심히 일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나서지도 않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먼저 했다고 생각했고, 애착을 가지며 내 일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보상이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닌 단지 회사에서 정한 룰, 그것도 학벌을 기준으로 정한 룰이라는 것에서 좌절이 이만저만 아녔다.
그날 이후 복도에서 처음 마주친 동갑내기 친구를 마주쳤는데 우리는 잠깐 스치는 눈빛에서 서로의 심경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미안한 마음의 눈으로 멀리서부터 내게 다가와 "OO야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이번에 내가 먼저 그렇게 돼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OO너도 열심히 다녔는데.. 에고" 이렇게 건네는 말에 난 내가 참 작은 사람임을 온몸으로 순간 표현했다. "아니야~ 괜찮아!" 하고 입은 얘기 했지만 눈동자의 진심은 "나 지금 거짓말을 너에게 하고 있다"라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대로 전달되는 순간이 나 스스로 느껴졌다. 움츠러들고 싶었고 구석이 있다면 구석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괜찮아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으니 이번엔 네가 먼저 된 거 축하해! 이렇게라도 마무리를 지었을 텐데 나는 괜찮아라는 세 글자 말고는 뒤에 더 이을 말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생각났다고 하더라도 뭐라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그 뒤로 그 친구가 부서이동까지 하며 우리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회사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OO 씨 주임 된 거 축하한다며 막내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한 그 친구에게 축하 덕담이 오가는 모습들을 보며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마음이 열등감이라는 거거구나! 느꼈다..
혼자 이 구역에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가, 귀여운 동생이 태어나 이쁨과 사랑은 동생 차지로 돌아가고 그 모습을 보여 가족 전체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첫째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아 이렇게나 내가 한참 작은 사람이구나.. 마음 참 못났구나 싶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시기심과 질투심 가득 찬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고 그 친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싫고 미웠다.
나를 위로하는 선임 중 한 분은 OO 씨가 주임 됐어야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위로라기보다 고이고이 접어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 모습을 다시 상기시켜 내 스스로 마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 더욱 상처 받았었다.
그 선임은 분명 그럴 의도가 아녔을 테지만 못나고 못났던 당시 나에겐 그 말조차 마음의 그릇에 담아내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어디론가 저 멀리 사라지길 바라면서 -
지금 회사 생활하며 힘든 시기가 오거나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 상황에 놓인 직원들을 볼 때 종종 처음 느꼈던 그 열등감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순간에 비하면 물론 지금의 나는 마음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있다. 굳은살이 생기고 아물고, 거칠었다가 다시 아물고 생기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꽤나 긴 성장통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오십 겹 정도의 굳은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