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의 시간만 바라보는 예비 퇴사자
퇴사가 확정된 나는 출근을 하면 루틴 업무 외에 해야 할 업무가 없다.
엑셀로 틈틈이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는 있지만 특별하게 회의를 참석하지도 않고, 업무에 팔로업 해야 할 것도 없는 이방인 이다. TF팀에 함께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루종일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지도, 물어보지도 않으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업무를 전해주지도,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권고사직을 통보받기 전까지 매일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모니터 엑셀 창을 보며 나는 왜 TF팀 에서 배제가 되었을까, 나도 저 회의에 참석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난 왜 늘 외톨이처럼 회사에서 이러고 있는걸까 별애 별 잡생각들에 휩싸여 업무가 집중 되지 않았고, 더이상 하고싶은 업무도 없고, 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설득 해야할지도 몰랐고,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도 방향도 잃고, 외롭고 애로웠다.
존재감을 잃고, 소속감을 잃고, 방향성을 잃고, 업무의 주도권 마저 잃으면 직원은 더이상 회사에서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다. 침묵으로 나가라는 배척의 신호밖에 될 수 없다. 이제는 나갈사람이라는 나의 존재가 확정되었고 나갈사람 이라는 소속감과, 퇴사자라는 존재감, 인수인계서 라는 방향성이 잡히고 나니 마음은 이루말할 수 없이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그뒤로 의욕도 앞서 인수인계서를 열심히 쓰고 나가야 겠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고, 칼퇴근도 할 수 있다는 목표 의식이 생겨 퇴근시간이 되면 앞장서서 일어나 인사하고 나오는 쿨함까지 등장 했다. 남아서 야근하는 이들을 보며 "아! 예전에 내가 저랬는데, 그때의 나같아서 좀 안타깝구나" 라고 생각이 들만큼 먼 시선에서 큰 틀을 바라볼 수 있는 키다리아저씨가 된 것만 같은 느낌 이였다.
뒤에 앉아 계신 부장님이 "나는 오늘도 집에 못가는데 OO과장도 일 많지? 나도 못가-" 라고 말하는 꼰대 말투에도 흔들림없이 퇴근 할 수 있는 이방인이 되어 자유를 얻은것 같아 꽤나 통쾌하고 행복하다. 꼰대 부장님도 터치를 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다는 것!
통쾌하고 행복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