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나보다. 지난겨울의 냄새가 잔뜩 밴 옷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계절마다 그 계절에 입을 옷을 꺼내고, 지난 계절의 옷을 정리하는 일은 반복되지만 어째 매번 버릴 옷이 잔뜩이다.
‘이런 옷이 있었어?’ 하며 매번 놀라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옷은 삼 년째 옷장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것. 그러니 이미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입지 않은 옷이고, 입지 않을 옷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야 버려진다.
옷을 좋아해서 내 취향과 스타일을 담은 옷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열심히도 입었다.
유난히도 좋아하는 파란색 계열의 셔츠들은 여전히 즐겨 입고 있어 버리기를 포기했다.
허리를 드러내는 롱스커트들은 이걸 언제 입었지? 싶을 정도로 통이 작았다. 이게 허리여 허벅지여. 옷마저도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이젠 정말 안녕.
너를 더 이상 입어줄 수가 없다. 예전이면 미련이 가득해 살을 조금 더 빼서 다시 입어보자! 생각해 다시 옷장에 고이 넣어두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또 몇 번의 계절 내내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을 알기에 이제 너를 정말로 보내준다. 아름다운 이별인지는 모르겠다.
해가 거듭될수록 생각하는 것은 조금 더 가볍게, 단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옷장 속도 내 삶도.
이렇게 많은 옷들을 다 이고 지고 살 것도 아닌데 하면서, 모든 것에 조금 가벼워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몇 번의 계절 동안 옷장 밖으로 나오지 못한 옷들은 버리기로 했다. 홀가분했다.
터질 듯한 옷장을 정리했다는 후련함과 무언가를 비워내는 일이 더 이상은 어렵지 않다는 것에 내가 제법 어른이 된 기분까지 들기도 했다.
엄마는 엄마의 옷장도 모자라 딸의 옷장까지 당신의 옷을 채웠다. 오늘은 모두 정리할 거라는 나의 말에 엄마의 옷들도 모두 방바닥으로 소환되었다.
엄마는 내 옷보다 더 수북이 쌓인 당신의 옷더미를 보며 머쓱한 듯 웃었다.
“ 엄마, 누가 보면 전직 모델인 줄 알겠어.” 하는 말에 엄마는 낄낄 웃었다.
‘“ 살아갈수록 자꾸 비우고,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엄마가 말했다.
이렇게 미리 정리해야 한다며, 정리도 못하고 어느 날 가버리면 어떡하냐는 엄마의 말에 나는 진지해지지 않기로 했다.
“ 뭘 어떡해. 다 안 치우고 가면 엄마 못 가게 바로 잡으러 가야지.” 말했다.
우리는 옷더미와 먼지가 가득한 작은 방에서 크게 웃었다.
제법 먼지 냄새가 나는 옷들을 헌 옷 수거함에 잔뜩 버렸다. 옷장이 제법 비워졌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하루가 근사했다. 정말, 봄이 온다. 한 계절이 또 이렇게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