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by 마음을 담는 사람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공책에 칸을 그려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적으라고 했다.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적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 말은 충격이었다. 이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문제가 생겨 끝까지 함께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 명씩 배에서 내리게 해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칸 탓에 소중한 사람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만 적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마저도 함께 하지 못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들을 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하나씩 칸을 지워나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한 명씩 지워가는 상황에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빙고 게임 때 한 칸씩 지우는 짜릿함과는 달랐다. 그 과정이 내게는 고통이고 슬픔이었다. 나는 어떤 이유인지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있었다. 한 명 한 명과 헤어질수록 나는 슬픔을 견뎌내지 못해 소리 내어 울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친구들은 우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선생님은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들은 가끔 이런 반응을 보인다며 나를 토닥이셨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배에 남은 사람은 엄마였다. 아빠도, 오빠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엄마가 끝까지 남았다. 이유는 있었다. 아빠는 수영을 잘했고 오빠는 엄마보다는 수영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야 그 긴 바다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만 잔인한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소중한 이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배를 타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지만 언젠가 우리가 헤어진다는 사실은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깨닫고 있었다.


헤어짐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모습의 헤어짐이든 아프다.

첫 이별은 처음 겪어본 일이기에 면역력이 없어 아프다고들 말한다. 그렇지만 두 번째 이별이 아프지 않다는 말도 없다. 헤어짐은 늘 아픈 것이다.

의연할 수 없고 담담할 수 없는 것이 헤어짐이다. 담담한 척을 해볼 수는 있지만 결국은 진심이 터져 나온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면 멈추기가 힘들 듯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많은 모습의 이별을 경험한다. 어떤 이별도 담담한 이별은 없다. 헤어짐이 담담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당신이 더 이상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이전보다 멀어진다는 것과 같은 이유들도 맞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더 사랑하지 못해서였다.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당신의 진심을 들으며 나의 진심이 터져 나왔다. 더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이별을 겪으며 더 후회한다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가장 먼저는 사랑이라고 얘기하며 그동안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당신의 진심에서 나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열한 살의 나는 공책 위에서 했던 헤어짐도 참 아팠다. 그리고 열아홉 살 때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도 아팠다. 시간이 흐르고, 스물한 살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아팠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까지 숱한 헤어짐을 겪어왔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나의 헤어짐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더 성숙하게 헤어짐을 맞이하지 못했고,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나는 여전히 열한 살 때처럼 아팠고 울어야 했다. 마음을 다했던 만큼이나 마음을 다해 슬퍼했다. 헤어짐에 맷집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당신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헤어짐의 가장 슬픈 이유가 적어도 더 사랑하지 못함이 아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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