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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Nov 24. 2024

스토아 철학에서 바라본 인간 감정에 대한 이해와 실천

 스토아 철학은 인간 감정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다루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종종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철학으로 오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이 감정에 대해 가지는 관점은 훨씬 깊고 미묘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을 외부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들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이성적인 통찰과 덕스러운 삶을 통해 조화롭게 다루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이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식과 이를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정의 본질: 판단에서 비롯된 반응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감정은 단순히 본능적 반응이 아닙니다. 감정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정의 본질은 우리의 해석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해석이 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외부 사건이 아닌 우리의 판단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이를 통해 감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말을 했을 때 이를 단순히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고 받아들이면 자존감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은 그의 관점일 뿐이고 나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지 않는다'라고 재해석하면 감정적으로 더 안정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의 판단이 감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재해석은 감정의 불필요한 과장을 막고,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감정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우리의 해석이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다스리면 불필요한 부정적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키울 수 있습니다.



감정의 분류: 파테와 유파테이아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각각의 감정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적절히 관리하는 데 중요합니다. 파테는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반면, 유파테이아는 덕과 조화를 이루며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1) 파테(Pathê)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으로,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고통을 유발합니다. 분노, 두려움, 질투, 탐욕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흔히 우리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며, 일시적인 만족이나 자극을 제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혼란과 고통을 초래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파테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우리가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훈련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파테는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이성적인 결정을 방해하며,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절이 필요합니다.


 (2) 유파테이아(Eupatheiai)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감정으로, 덕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서 비롯됩니다. 감사, 기쁨, 사랑과 같은 감정이 이에 속하며, 스토아 철학자들은 유파테이아를 적극적으로 기르도록 권장했습니다. 유파테이아는 파테와는 반대로 우리의 이성과 조화를 이루며,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가 덕스러운 행동을 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우리에게 지속적인 만족과 내적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돕고 난 뒤 느끼는 깊은 만족감이나, 자신의 가치와 덕을 실천할 때 느끼는 평온함 등이 유파테이아에 해당합니다.  


이 분류는 스토아 철학이 감정을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덕스러운 삶을 통해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정 관리의 도구와 실천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다스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며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천 방법을 제시합니다.


 (1) 프라에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

 '사전 고찰'로 번역되는 이 실천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를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회의 전에 예상되는 어려운 질문을 미리 생각하고 답변을 준비하는 것, 혹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도로 상황이나 날씨 변화를 미리 파악해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준비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보다 차분하게 문제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인지행동치료(CBT)와도 유사합니다. 인지행동치료(CBT)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감정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 치료법입니다. 가령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예상되는 질문과 장애물을 미리 상상하며 준비한다면, 불안을 줄이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전에 문제를 대비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감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2) 조망법(View from Above)

 문제를 더 높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이 방법은 마치 독수리가 하늘에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더 넓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문제를 우주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작은 갈등이나 교통 체증 같은 상황도 조망법을 통해 보면 인생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사소한 일로 느껴지게 됩니다. 이로써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문제를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나 자신과 사건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문제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와 우주의 질서를 깊이 인식하며 평온을 찾았습니다.


 (3) 통제 가능성 구분 (Distinguishing What is Within Our Control)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일화에서, 그가 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죽음이라는 외부의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명예를 지키는 행동은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과도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 업무의 양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 업무를 어떻게 접근하고 처리할지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신의 반응에 집중함으로써 내적 평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통제할 수 있지만, 외부의 사건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태도는 스토아 철학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4) 객관적 묘사(objective description)

 사건을 감정적으로 왜곡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묘사하는 습관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약속에 늦었을 때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라고 해석하는 대신, 단순히 '교통 문제로 늦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중립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컨대, "나는 실패자다" 대신 "이 과제에서 실수를 했다"라고 묘사하는 것은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을 줄여줍니다.



긍정적 감정의 육성: 덕스러운 삶에서 오는 기쁨

스토아 철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을 기르는 데에도 초점을 둡니다. 긍정적 감정을 키우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매일 감사 일기를 쓰거나, 자신이 성취한 작은 일들을 기록하고 축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주며 돌보듯, 작은 감사의 습관이 마음의 평화와 만족감을 키워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또한, 자연 속에서 산책하거나 명상하는 것도 내면의 평화를 키우고 긍정적인 감정을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긍정적 감정이 생겨난다고 믿었습니다.  

감사와 만족: 현재의 순간에서 감사할 점을 발견하고, 작은 성취를 축하하는 습관은 긍정적 감정을 키우는 데 중요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를 통해 삶의 작은 기쁨과 만족을 누렸습니다.

자연과 조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내적 평화를 가져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삶은 만족감을 증대시킵니다.

공감과 연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타인과 공감하고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은 삶의 깊은 의미와 기쁨을 제공합니다.



현대인을 위한 스토아적 통찰

스토아 철학의 감정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합니다. 불확실성과 스트레스가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스토아 철학은 심리적 안정과 회복력을 제공합니다. 

스트레스 관리: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데 스토아적 기술은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비판적인 말을 들었을 때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방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갈등을 줄이고 더 건설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관계 갈등 해결: 감정적으로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상대방의 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심리적 회복력: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집중하는 태도는 현대인이 감정적 유연성과 안정감을 키우는 데 기여합니다.



감정과 함께하는 이성적이고 조화로운 삶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 생활 속에서 우리가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다루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덕스러운 태도로 대처함으로써, 우리는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다스리며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실천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의 감정이 외부 사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현대인에게 스토아 철학의 통찰은 철학적 사유를 넘어 실질적 도구로 작용하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내적 평화를 찾는 길을 제시합니다.


 스토아 철학은 단순한 과거의 지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이 철학적 접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으며,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덕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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