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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법

by 정지영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할수록 감정에 대해 더 큰 힘을 가지며 감정의 지배를 덜 받는다"(The mind has greater power over the emotions and is less subject thereto, in so far as it understands all things as necessary.)(스피노자, <에티카> 중에서)


우리는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흔들립니다. 감정에 휘말려 허둥대거나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갑작스러운 실패나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분노와 좌절, 슬픔이 밀려올 때면 우리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맙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때의 감정적인 판단과 행동이 낳은 실수들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런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고, 더 현명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는 합리론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철학자였습니다. 흔히 합리론자라고 하면 이성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여기기 쉽지만, 스피노자는 오히려 이성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성이 감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감정의 파도 앞에서는 나뭇잎처럼 흔들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입니다.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견디기 힘들어하고, 작은 모기 한 마리에도 잠을 설치며, 보이지도 않는 병균 하나에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안다고 해도 그것은 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지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우주를 움직이는 자연법칙이 이성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인간의 정신은 이 자연을 닮았다고 보았지요. 그는 이 자연을 신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신이란 우주를 이성적으로 운행하는 원리이자 법칙을 뜻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신성한 이성의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종종 허상에 빠진다는 점입니다. 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마치 신처럼 완벽한 능력을 지녔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오해는 이성의 힘을 과대평가하게 만듭니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우주를 정복할 수 있다고, 감정과 욕망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런 허상을 깨뜨리고자 했습니다. 그의 『윤리학』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지혜의 핵심은 바로 우리 삶을 뒤흔드는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됩니다. 미지의 존재가 주는 자극이 두려움을 낳고, 무언가를 잃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때의 자극이 슬픔을 만듭니다. 모든 감정의 원인은 외부에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주와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감정의 힘 앞에서, 이성과 의지는 무기력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 해도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 앞에서는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맙니다. 설령 누군가가 엄청난 의지력으로 감정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다 해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감정에 대해 더 큰 힘을 가지고, 그것의 지배를 덜 받을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는 그 열쇠가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나 사건이 사실은 자연의 필연적인 법칙에 따른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 감정의 지배를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살펴볼까요?


실패를 두려워하고 좌절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실패 역시 성장 과정의 필연적인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실망과 낙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가령 창업에 실패한 사업가가 "이는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장 상황과 여러 요인들이 맞물려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자책하는 대신 다음 도전을 위해 차분히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세월 앞에서는 평등하며, 늙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입니다. "나도 필연적으로 나이 들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쓸데없는 두려움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앞서 저지른 실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실수조차 당시의 내 성향과 상황이 빚어낸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이해한다면, 지나간 일을 두고 끝없이 자책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험을 망친 학생이 "그때의 내 컨디션과 준비 상태로는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받아들인다면, 후회하는 대신 다음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를 찾는 데 있지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이 자연의 법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 분노와 슬픔도 삶의 필연적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그런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스피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감정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이 생기는 것이 필연적임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에 끌려다니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감정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다루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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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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