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야 하며, 시인은 글을 써야 한다. 이는 그가 궁극적으로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건 꼭 해야만 한다."(A musician must make music, an artist must paint, a poet must write, if he is to be ultimately at peace with himself. What a man can be, he must be.)(에이브러햄 매슬로우,『동기와 성격』중에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생존을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매슬로우가 말한 "하고 싶은 것"은 내면의 필연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대 사회의 "해야 할 것"은 종종 외부적 압박이나 의무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괴리는 현대인의 자아실현 과정에서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매슬로우 이전 심리학계는 정신분석학과 행동주의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과 충동에 주목했고, 행동주의는 조건화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인본주의 심리학은 인간의 잠재력과 자아실현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슬로우는 아인슈타인과 같이 자아실현에 성공한 인물들의 특징을 연구하면서,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이라는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매슬로우는 뛰어난 인물들의 삶을 연구하면서 자아실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 핵심을 찾아냈다고 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대표적인 인물인 아인슈타인의 경우,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과 자발성을 발견했고, 영적으로도 충만한 상태에 이르러 '자아실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매슬로우는 이처럼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절정 경험'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발견했는데, 이는 창조적 영감이 폭발하거나 깊은 통찰을 얻는 등의 뛰어난 경험을 말합니다.
매슬로우가 이야기한 '절정 경험'은 오늘날 심리학계에서 주목받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과 맥을 같이 합니다. 몰입이란 우리가 어떤 일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기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주어진 과제의 난이도와 자신의 능력이 딱 맞아떨어질 때 찾아옵니다. 이러한 몰입의 순간은 매슬로우가 말한 자아실현의 경험과 매우 비슷한데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런 깊은 몰입의 경험이 반드시 의식주나 안전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채워진 다음에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매슬로우는 자신이 말하는 절정 경험은 더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된 이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 단계설은 마치 사다리를 오르듯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욕구는 배고픔을 달래고, 잠을 자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과 같은 생존의 욕구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안전하게 살 집이 있고, 건강을 지키며,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욕구들이 충족되고 나면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으며, 뭔가 이루어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매슬로우는 이렇게 낮은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져야 그 위의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매슬로우의 이론대로라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난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들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해도,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자아실현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걸까요? 재능이 있고 그것을 펼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더라도, 배고픔이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과연 이것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설명일까요? 이런 물음들은 매슬로우의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오늘날 심리학계에서는 매슬로우의 단계별 욕구 이론이 모든 상황에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창작 활동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더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유하지만 늘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활이 곤궁한 가운데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들이 있지요. 진정한 예술가는 돈이 모일 때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활이 안정된 예술가가 창작의 고통 속에서 더 큰 불행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배고픔을 참아가면서도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매슬로우의 이론이 이상적인 설명은 될 수 있어도, 실제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반 매슬로우의 말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답은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시선이 아닌,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이 아닌, 자신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우리 삶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이 둘은 모두 우리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쫓다 보면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반대로 해야 할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여도 마음속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매슬로우는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란 단순한 욕심이 아닌,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는 것입니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자신과 평화롭지 못한 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때의 답답함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진짜 내 마음을 숨기고 남들의 기대에 맞추느라 지쳐가는 모습
점차 희미해지는 자존감과 함께 '진짜 나는 누구인가' 혼란스러워지는 순간들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이 멈추면 무기력감이나 우울함이 찾아옵니다. 새로운 도전이 두렵거나 실패가 걱정되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기도 하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나 가치와 이어져 있지 않다고 느낄 때면,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어려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하고 싶은 것'은 뒤로 미루고 '해야 할 것'만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매슬로우의 이론은 우리에게 소중한 통찰을 전해줍니다. 진정한 자아실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네 가슴이 원하는대로 선택하라." 이 조언은 결국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바탕으로 자신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이후로 자기 마음 속에서 지속되는 후회와 자기 원망과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매슬로우의 말은 이런 마음의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얻는 방법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