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있지 못하는 것, 거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All men's miseries derive from not being able to sit in a quiet room alone.)(파스칼, <팡세> 중에서)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 있었나요?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도, 주변의 말소리도 없이, 오직 자신의 생각과 함께 머물렀던 그런 순간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의 적막조차 견디기 힘들어하고, 텅 빈 시간을 채우려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이런 현대인의 모습은 수백 년 전 파스칼이 남긴 한 문장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17세기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있지 못하는 것, 거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날카로운 통찰을 남겼을까요?
파스칼이 보기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는 이유는 불안과 공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홀로 있는 순간 마주해야 할 내면의 텅 빈 느낌, 삶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피하려 한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즐거움을 찾고,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다툼조차 불편한 침묵을 깨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이런 회피는 잠시의 위안은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할 기회를 빼앗아가고 맙니다.
이런 생각이 단순한 추측이 아님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2014년 버지니아 대학교의 티머시 윌슨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인데요. 참가자들에게 요청한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15분 동안 그저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기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이 짧은 시간조차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차라리 전기 충격을 받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내면의 고요를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파스칼의 통찰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파스칼은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공허가 단순한 마음의 불편함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 자체에 뿌리박힌 깊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가 보기에 인간은 무한을 꿈꾸면서도 유한한 존재라는 한계를 자각하기에 이런 감정을 느낍니다. 영원한 의미를 찾고 싶지만 결국에는 죽음과 허무를 마주해야 하는, 이 모순된 상황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스칼은 이런 실존적 불안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진정한 깨달음과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이렇게 불안과 직접 마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한계를 느끼는 것이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이런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신앙이나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한 평온과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이 말하는 인간의 불행은 단순히 슬프거나 괴로운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 깊숙이 자리 잡은 근본적인 불만족과 허무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끊임없이 성공을 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목표를 세우며 끝없는 경쟁에 뛰어듭니다. 이런 끝없는 추구는 잠시의 성취감은 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더 큰 공허함과 불안으로 돌아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외로움이 두려워 의미 없는 관계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진정한 교감이 아닌, 외로움을 잠시 잊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어서 오히려 더 깊은 고립감을 낳게 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파스칼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자극으로 가득합니다. 스마트폰과 SNS, 하루 종일 이어지는 뉴스처럼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바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분주함은 오히려 우리를 더 불안하고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요. 잠시라도 가만히 있기가 어려운 이유는, 고요 속에서 드러나는 진짜 내 모습, 진짜 내 마음을 마주하기가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고요함'을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정적이 아닌,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말이지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방법들도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주변의 자연을 천천히 둘러보거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한 곳에서 오늘 내가 느낀 감정들을 되짚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는 하루 중 일정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파스칼의 생각과 비슷한 통찰을 동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현인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위'와 '자연'의 가치를 강조했지요.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들거나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삶의 지혜를 말했습니다. 『도덕경』16장에는 "歸根曰靜, 是謂復命" (귀근왈정, 시위복명)란 구절이 나옵니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말하니 그것은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고요함은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순리, 즉 진정한 지혜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파스칼이 말한 고요한 방에서의 성찰과도 맞닿아 있어, 동서양을 넘어 고요함이 지닌 깊은 의미를 보여줍니다.
결국 파스칼의 말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은 불안과 공허를 피하는 도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과 정직하게 마주하며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귀중한 순간이 될 수 있지요. 노자의 가르침 역시 이런 고요함의 가치를 일깨우며, 내면의 평온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오늘, 단 5분만이라도 어떨까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용한 방에서 나의 생각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요. 그 짧은 순간이 당신의 삶에 깊은 평온과 맑은 깨달음을 선물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