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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비실재성 : 맥타가트

by 정지영

"시간은 정말 존재하는가?"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출근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떻게 들릴까요?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걸 보며 하루를 계획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삶에서 시간은 너무나 당연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이 도발적인 주장으로 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철학자 존 맥타가트(John McTaggart)입니다. 그는 자신의 논문 「시간의 비실재성(The Unreality of Time)」(1908)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시간'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맥타가트는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시리즈를 제시했습니다.

A-시리즈(A-Series)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내일 있을 회의(미래)'가 '지금 진행 중인 회의(현재)'가 되었다가 '어제 했던 회의(과거)'가 되는 방식입니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모습입니다.


B-시리즈(B-Series)는 사건들이 시간 속에서 '이전과 이후(before-after)'의 관계로 배열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은 졸업보다 이전의 사건이고, 졸업은 첫 취업보다 이전이다"라는 식으로, 사건의 순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 시리즈에서 시간의 비샐재성을 증명하는 맥타가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단계를 따릅니다

전제 1: 진정한 시간이 존재한다면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전제 2: 변화가 있으려면 A-시리즈가 필요하다.

전제 3: A-시리즈는 논리적 모순을 포함한다.

결론: 따라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A-시리즈에는 어떤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모든 사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속성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생일 파티"라는 사건은 미래의 사건이었다가, 현재의 사건이 되고, 과거의 사건이 됩니다. 같은 하나의 사건이 이러한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실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위와 같은 설명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요? 같은 생일 파티라도 시점에 따라 '미래의 파티', '현재의 파티', '과거의 파티'로 구분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치 한 사람이 나이에 따라 '어린이', '어른', '노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반론에 대해 맥타가트는 이렇게 설명할 겁니다. 상태와 사건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상태란 어떤 시점에서 지속되는 특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 어른, 노인이라는 상태는 각각 다른 시기에 존재하므로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다릅니다. 사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과정입니다. 생일 파티를 예로 들면, 하나의 동일한 파티가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의 일이 되었다가, 현재의 일이 되고, 다시 과거의 일이 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이 동시에 어린이이면서 어른이고 노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보면 맥타가트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일 파티를 시점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은 단순히 말의 구분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하나의 같은 사건인데, 이것이 시간에 따라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B-시리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B-시리즈란 여러 사건을 단순히 '먼저'와 '나중'이라는 관계로 늘어놓는 방식입니다. 가령 "대학 졸업 → 첫 직장 → 퇴직"처럼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배열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의 움직임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순서만 나열할 뿐,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생생한 흐름을 표현하지 못하죠.

'지금 이 순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현재라는 개념이 빠져 있어 시간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시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변화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단조롭죠.

우리의 실제 경험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렇게 보면 A-시리즈는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B-시리즈는 시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맥타가트는 놀라운 결론을 내립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현대 물리학,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중력장의 강도에 따라 다르게 흐릅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균일한 시간의 흐름이 실제로는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현대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개념이 아닌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연속체로 바라봅니다. 이는 맥타가트의 시간 비실재론과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합니다.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맥타가트의 시간의 비실재론은 우리의 직관과 어긋납니다. 그래서 철학 이론을 가장한 헛소리에 가깝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현대과학의 성과들은 우리의 직관적 시간 개념보다 맥타가트의 시간 개념과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스마트폰에서 실행되는 GPS가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 덕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했듯이, 위성에서는 지구 표면과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GPS는 이 시간 차이를 보정해야만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맥타가트가 주장한 것처럼,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최신 인공지능 기술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챗봇이나 음성 비서는 시간을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이해합니다. 이들에게 시간은 단순한 데이터의 순서일 뿐, 우리처럼 흐름으로 경험되지 않습니다. 이는 맥타가트가 설명한 B-시리즈와 매우 비슷한데, 이런 차이 때문에 AI가 인간의 시간 경험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은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마치 시간의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는 감각이 실제로는 우리의 특별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거꾸로 재생할 때 이상하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들은 시간의 방향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맥타가트의 시간론은 단순한 철학적 사고실험이 아닙니다. 그의 통찰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부터 우주의 근본 법칙까지, 현실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미래 기술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고,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철학적 논증과 현대 과학의 발견들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찰을 요구합니다. 맥타가트의 분석이 보여주듯, 시간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과거-현재-미래라는 흐름(A-시리즈)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들의 전후 관계(B-시리즈)입니다. 그러나 둘 다 완벽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현대 과학은 이러한 철학적 통찰을 뒷받침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이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더 나아가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에서 시간의 방향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의 일방향성은 거시 세계의 특별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는 깊습니다. 시간이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 경험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심리적 위안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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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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