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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생태학 : 티머시 모턴

by 정지영

지구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미세 플라스틱, 방사능 오염 같은 문제들은 우리 눈앞에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깊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런 문제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환경을 단순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봐야 할까요? 혹은, 우리가 환경과 맺는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생태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우리가 자연과 환경을 바라보는 기존의 사고방식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s)와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gy) 개념을 통해 현대 생태적 사고를 완전히 뒤바꿉니다.



객체지향 존재론(OOO)과 생태철학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사물을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의자는 인간이 앉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나무는 목재로 사용되거나 공기 정화를 돕는 자연적 요소로 간주됩니다. 즉, 사물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은 이러한 인간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며, 모든 객체는 인간과 무관하게도 독립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환경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서로 깊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플라스틱 컵을 쓰고 버리면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미세 입자로 남아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 속으로 스며듭니다. 즉,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플라스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객체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관점에서 환경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령형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물, 자연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s)

티모시 모턴은 우리가 직면한 현대적 환경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s)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하이퍼오브젝트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인간이 직접 인식하기 어려운 거대한 대상를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기후 변화, 방사능 오염, 미세 플라스틱 등이 있습니다.('오브젝트(Object)'를 '대상'으로 번역한 이유는, 오브젝트가 물질적 존재뿐만 아니라 개념적 요소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객체'보다 '대상'이 더 포괄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 적절한 번역어로 선택되었습니다.)


하이퍼오브젝트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비국지성(Nonlocality):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예: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지만, 특정한 한 곳에서만 감지되지 않는다.)

점증성(Gravity-like effect):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효과를 통해 존재를 알 수 있다. (예: 온실가스는 보이지 않지만, 기온 상승과 극단적 기후 변화로 인해 그 영향을 실감할 수 있다.)

시공간 초월성(Temporality): 인간이 이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을 초월한다. (예: 플라스틱은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으며, 인간의 생애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한다.)


하이퍼오브젝트에 속하는 기후 변화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가 실제로 무엇인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폭염, 홍수, 산불 등의 현상을 통해 그 영향을 경험합니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걸쳐 작용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입니다. 즉, 우리는 하이퍼오브젝트와 얽혀 있으며,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의 생태학(Dark Ecology)

모턴은 기존 환경 운동이 자연을 깨끗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방식을 비판하며, 인간이 이미 자연과 깊이 얽혀 있으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생태적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를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gy)”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어둠(Dark)’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기존 환경 논의가 자연을 순수하고 이상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을 지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연은 결코 깨끗하고 완벽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활동과 얽혀 복잡하고 불편한 진실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둠 속의 생태학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그 일부로서 얽혀 있는 네트워크다.

생태 위기는 우리가 자연과 얽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버리면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강과 바다를 떠돌면서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만든 쓰레기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둠 속의 생태학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티모시 모턴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미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가 환경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객체지향 존재론(OOO)은 인간과 사물이 동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하이퍼오브젝트 개념은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거대한 환경 문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합니다. 또한 어둠 속의 생태학은 우리가 환경과 맺는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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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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