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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ug 19. 2019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다음 저기' 보다 '지금 여기'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유물들이 우리 몸을 중심으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고 있다. 이 물건들의 소우주를 구성하는 행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탄생한다. 먼저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들로 인해 나의 소우주로 편입된 것들이 있다. 때로는 필요보다는 나의 또 다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물건들도 상당히 많다. 사회적 과시를 위한 물건도 있고 미래 투자를 위한 물건도 있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비싼 명품백이나 외제 승용차는 필요에 의해 구입했다고만 보기 어렵다.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복합적인 가치를 지니는 대표적 소유물이다. 아파트는 살기 편한 집이라는 가치,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기 위한 가치, 향후 구입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한 미래 투자가치 등을 복합적인 가치를 가진다. 이와 같이 물건들의 가치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복합적인 가치를 가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해부하며 '상품'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상품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 모른다. 그런데 상품이 가지는 핵심적인 두 가지 가치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이다. 사용가치란 말 그대로 그 상품을 사용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가치다. 가방은 물건을 담아 들고 다니기 위한 사용가치를 가진다. 승용차는 타고 이동하기 위한, 아파트는 거주공간으로서의 사용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같은 가방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수 백, 수 천배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 상품을 다른 상품으로 교환할 때 부여되는 가치인 교환가치 때문이다. 같은 크기와 용량, 무게를 가진 가방이라도 만 원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가방이 있다. 그런데 사용가치는 같은데 수백만 원, 수 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명품백도 있다. 싼 가방과 명품백을 교환한다고 해 보자. 싼 가방 수 백개, 수 천 개가 있어야 명품백과 교환할 수 있다. 즉 사용가치는 1:1이지만 교환가치는 1: 100, 1:1,000을 훌쩍 뛰어넘는다.

  예전 좀 산다는 집 책장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꽂아두는 것이 거의 필수인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집의 백과사전은 집주인의 손 때가 묻고 밑줄과 낙서가 가득하고, 다른 집 백과사전은 한 번도 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깨끗하다고 해 보자. 같은 교환가치를 가진 두 백과사전 전집의 사용가치는 어떻게 다를까? 낡고 손때 묻은 백과사전의 사용가치가 깨끗한 백과사전보다 훨씬 높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돌아가신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낡은 만년필을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자식에게 부친의 손때가 묻은 그 만년필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지만 어떤 비싼 만년필보다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이렇게 물건들 중에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의 비중이 월등한 것들이 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소중한 물건들은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생존에 꼭 필요한 물, 공기와 같은 것들은 교환가치가 없다. 그러나 사용가치로 보면 소유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우므로 엄청나게 가치가 높다. 손 때 묻은 책이나 만년필을 누가 돈을 내고 하겠는가?  교환가치는 없으나 사용가치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오롯이 담고 있는 이 물건은 어떤 이에게는 아무리 많은 준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다.

  인터넷에 고가의 카메라 중고장터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장터에서는 카메라와 렌즈만 가지고는 그 교환가치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카메라와 렌즈를 담았던 제품 상자와 비닐, 설명서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야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다. 이러한 일종의 관습 덕분에 카메라와 렌즈 중고거래를 했던 사람들은 꼭 제품 상자 등의 부산물까지 소중하게 보관한다. 이런 사진애호가들이 카메라에 손 때를 묻히고 때론 크고 작은 상처를 내면서 사진 촬영에 열정을 온전히 불사를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제품 상자를 보관해 둔다는 건 교환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니 카메라와 렌즈가 가진 교환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여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는 어느 정도 열정적인 사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니 말이다.

  많은 경우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론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맞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두 가치 중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 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소유관 내지는 인생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

  상품이나 물건에 대해 가지는 욕망을 좀 더 세분화하면 소유욕과 치부욕으로 나눌 수 있다. 소유욕은 말 그대로 가지려는 욕망이다. 그런데 치부욕은 좀 다르다. 소유함으로써 그 소유로 인해 더 많은 물건들과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 능력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이 치부욕이다. 소유욕은 어느 정도 소유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면 충족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치부욕은 끝이 없다. 소유욕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고 치부욕은 저기 미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란 소설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소유욕과 치부욕의 차이점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좀 더 많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걷고 또 걷다가 지쳐 쓰러진 사람은 결국 무덤으로 사용할 정도의 좁은 땅만을 가졌다. 그가 자신이 살 집과 먹고사는 데 필요한 곡식을 가꿀 수 있을 정도의 땅, 즉 사용가치에 따른 땅을 소유하고자 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소유하고자 했던 그 넓은 땅을 그가 죽지 않고 가지게 되었다면 그 이후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땅을 소작인들에게 주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얻은 그의 부가 그의 삶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을까? 로또복권 1등 당첨자들이 그 엄청난 행운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을 망치는 엄청난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사용가치는 현재 그 물건이 소유자에게 주는 '지금 여기'의 가치이다. 그 물건이 내게 얼마나 유용한가, 큰 만족과 행복을 주는가에 따라 그 소중함이 결정된다. 그에 반해 교환가치는 그 물건의 소유자에게 '저기 다음'의 가치이다. 그 물건보다 큰 교환가치가 있는 물건을 소유한 타인을 보았을 때 질투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데 이는 교환가치가 결국에는 가치의 비교라는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은 대부분 미래의 원망보다 현재의 향유에 의해 주어진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불행은 어쩌면 사용가치를 훌쩍 넘어서는 교환가치의 지나친 비대함에 의한 것인지 모른다. 가능한 많은 교환가치를 치부하려 하기보다 사용가치가 높은 소유물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복을 얻기 위한 비법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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