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과 가까워집니다. 가족, 친구, 경제 공동체, 정치적 동지, 취미가 같은 동호회 등 다양한 관계도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가장 특별한 관계의 이유, 연결하는 힘은 역시 사랑입니다.
잠시 생각해봅시다. 사랑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먼저일까요? 보통 우리는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있어야 사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고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사랑이 앞설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그 변화는 극적이며, 사랑은 사람을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힘이 먼저 존재하며, 우리는 그 사랑의 힘에 참여함으로써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요?
2. 주디스 버틀러 : 사랑의 수행성
(1) 사랑의 수행성 이론
현대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사랑이 단순히 개인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사람을 규정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랑의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이는 마치 성별(젠더)이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는 이론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옷을 입고,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여성다움' 또는 '남성다움'이 형성됩니다.
버틀러는 이 개념을 사랑에도 적용합니다. 사랑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와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고 표현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해"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이런 언어적 표현은 사회적 규범에 기반하며, 우리는 이 규범에 맞춰 사랑을 표현하고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에서 "I do"라는 말은 단순한 동의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이 말은 두 사람 간의 사랑을 공식화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관계로 만듭니다. 또 다른 예로는 발렌타인데이에 연인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들이 반복되면서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구체화되고 실질적인 관계로 자리잡습니다.
(2) 사랑과 사회적 규범
버틀러의 이론은 사랑에 대한 고정된 생각에 반대합니다. 사랑은 고정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세계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주의적 사랑에 대한 관념은 우리에게 상식처럼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데아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질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데아란 특정한 사람들이 가진 생각이나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버틀러는 사랑이 사회적 규범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적 규범은 어떤 형태의 사랑이 허용되고, 어떤 형태의 사랑이 금지되는지를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시대나 문화에서 특정한 형태의 사랑이 규범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규범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규칙과 기대에 의해 형성됩니다.
(3) 사랑의 불안정성과 유동성
버틀러는 사랑을 본질로 보는 대신 변화하는 행위로 설명합니다. 사랑의 행동은 반복적이지만 항상 똑같지 않고, 변화를 동반합니다. 이는 사랑의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행동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랑과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상투적인 사랑에 만족하지 말고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예를 들어, 연애 초기에 상대방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하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지거나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랑이 변하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며, 항상 새로운 모습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유동성은 성별 규범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는 성별 규범을 강화하거나 도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성별 정체성의 형성과 변화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불안정성과 유동성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사랑의 관계는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는지에 깊이 영향을 미치며, 이는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랑의 유동성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수용하는 사회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랑의 표현에 더 큰 자유를 제공합니다. 이는 사회적 포용성과 다양성을 증진시키며,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권력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표현되는 유동적인 개념입니다. 버틀러의 이론은 사랑이 사람을 규정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포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사랑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행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랑의 힘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