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어둠에 이름 붙이기: 감정을 분별하는 지혜

by 정지영

"정념(정서)은 우리가 그것에 관해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즉시 정념이기를 그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5부, 정리 3


이름 없는 감정의 지배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불안이나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세상은 흔히 말한다. "의지를 갖고 이겨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하지만 스피노자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감정을 이기는 힘은 의지나 긍정이 아니라, 오직 '그 원인에 대한 참된 인식'에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원인도 모르는 불안, 분노, 우울감으로 인해 허덕이는가? "기분이 안 좋다." 이 한마디 뒤에는 실망, 좌절, 서운함, 무력감 등 이름 모를 부정적 감정의 그림자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의 '원인'을 모르기에, 그것을 다스릴 힘도 갖지 못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에 두려워하듯, 이름 없는 감정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감정의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 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치 어두운 방에 불을 켜듯 막연했던 감정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무시당했다는 느낌에서 오는 모욕감'이구나." 이렇게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름 없는 그림자에 휘둘리지 않고, 그 원인을 파헤칠 수 있는 단서를 손에 쥐게 된다.


감정 명명의 힘: 상상에서 이성으로의 전환

이 변화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지식의 3단계' 이론을 살펴보자. 이 이론은 우리가 어떻게 감정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로드맵을 보여준다.


1단계: 상상(Imaginatio)과 혼란된 감정
'기분이 안 좋다'는 막연한 상태는 '1종의 지식(상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상상이란, 외부 사물이 우리 신체에 남긴 흔적(결과)만을 단편적으로 인식할 뿐, 그 원인의 전체 구조는 파악하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인식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감정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 감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노예가 된다. 이것이 바로 '부적합한 관념'의 상태다.


2단계: 이성(Ratio)과 명확한 감정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2종의 지식(이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이것은 '질투'다"라고 명명할 때, 우리는 단순히 라벨을 붙이는 것을 넘어, 그 감정의 공통된 성질과 필연적인 인과관계(예: 비교, 소유욕, 존재력 감소)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즉, 개별적이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보편적인 이성의 틀 안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3단계로의 전망: 직관지(Scientia Intuitiva)와 완전한 이해
이성적 이해가 깊어지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3종의 지식(직관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감정이 나의 고유한 본성(코나투스) 및 우주 전체의 필연적 질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즉각적으로 통찰하는 최고 수준의 인식이다. 이때 감정은 더 이상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완전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양태로서 긍정된다.


감정을 분별하는 지혜: 코나투스 관리의 기술

풍부한 감정 어휘는 우리 존재의 엔진인 코나투스의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하는 계기판과 같다. '기쁨'과 '슬픔'만으로는 엔진의 미세한 변화를 알 수 없다.

강도의 스펙트럼
"짜증"과 "분노", "격노"는 모두 존재력 감소(슬픔)를 나타내지만, 그 감소의 정도가 다르다. 이를 구분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수준의 대응을 할 수 있다.

질적 구별
"불안", "걱정", "공포"는 모두 미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지만, 각각 불확실성, 구체적인 문제,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서로 다른 '부적합한 관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각각의 감정은 서로 다른 이성적 대응을 요구한다. 정확한 명명은 곧 정확한 진단인 셈이다.


신경과학적 증명: 뇌의 작동 모드를 바꾸는 힘

이 철학적 통찰은 현대 뇌과학에 의해 놀랍도록 정확하게 증명된다. UCLA의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감정 라벨링) 순간, 감정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의 활동은 줄어들고, 이성적 분석과 자기 통제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이 증가한다.


이는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정신(사유)의 세계에서 '명명'이라는 이성적 활동을 하는 순간, 신체(연장)의 세계인 뇌에서는 실제로 신경망의 작동 방식이 '상상(편도체 중심)'에서 '이성(전전두엽 중심)'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실천: 감정을 분별하는 지혜 기르기

감정을 분별하는 지혜는 단순한 단어 암기가 아니라, 부적합한 관념들을 적합한 관념으로 전환하는 이성적 훈련이다.

감정 세분화 연습
하루에 한 번,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며 가능한 한 가장 정밀한 단어로 명명해보자. '좋다/나쁘다'를 넘어 '평온하다', '뿌듯하다', '설렌다' 혹은 '허탈하다', '서운하다', '착잡하다' 등으로 세분화하는 연습이다.

감정의 원인 분석
명명한 감정 뒤에 숨겨진 '부적합한 관념'이 무엇인지 추적해보자. "서운하다"면, 그 뒤에는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마음을 알아줬어야 했는데"라는 비합리적인 기대가 숨어있을 수 있다.


타인에게서 배우기
타인의 감정 표현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그들이 어떻게 미묘한 감정을 구분해서 사용하는지 배우는 것도 훌륭한 훈련이다.



명명의 힘: 이해에서 오는 기쁨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우리를 감정의 수동적 객체에서 능동적 주체로 전환시킨다. 스피노자에게 가장 순수하고 지속적인 기쁨은 바로 이 '이해의 기쁨'이다.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구조를 파악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정신적 힘(코나투스)이 증진되었음을 느끼며 안정적인 기쁨을 경험한다.


이름 없는 감정의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우리는, 정확한 명명을 통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를 통해 자유를 얻는다. 스피노자가 제시한 감정의 자유는 바로 이 일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실천에서 시작된다.



AI 오디오 오버뷰 듣기



keyword
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팔로워 315
이전 23화3-1. 명석판명한 관념: 감정 해방의 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