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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Feb 08. 2020

비행하면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

딱 30분만 되돌릴 수 있다면.....

 2002년 6월이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신화를 이루고 있을 동안 난 열심히 에미레이트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면접을 볼 때마다 들리는 함성소리... 그때 면접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8시 정도에 끝났다. 매 면접마다 슈퍼스타 K방식 이였기 때문에  내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면접관이 들어와서 '축하한다' 고 말을 하면  다음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3번을  진행한 후 끝나고 나왔을 때가 우리나라가 폴란드를 2대 0으로 이긴 날이었다. 난 면접으로 파김치가  된 상태였지만  서바이벌 면접에서 살아남아 파이널 면접이 확정된 상황이라 있는 힘껏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 기억이 난다. 그렇게 파이널까지 본 후 자랑스럽게 두바이에 입성을 했다.


하지만   에미레이트 합격 후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얘기를 했을 때  내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뭐라고? 누가? 네가? 승무원? 네가 두바이를  왜 가냐??" 이런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만 이렇게 까지 친구들이   믿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승무원을 준비한다는 걸  딱 한 명의 친구에게만 애길했기때문에 갑자기 승무원이 됐다고 하니 놀랄 만도 다. 그들이 생각하는 승무원의 이미지와 나의 이미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 이해한다. 나도 승무원을 준비하기 전 선입견이 있었다. 키도 커야 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야 하고 친절한 태도와 여성스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런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목소리도 걸걸하고 나긋하기보다는  터프했고 화장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언젠가  한국 비행을  오면  친구들도 믿어주겠지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연락은   편지로 하거나  MSN 채팅으로 했기때문에  자주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는 에미레이트에서 일하는 한국인 승무원이 100명 정도였고 한국 비행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너 정말 비행하는 거 맞냐"부터  "두바이에서  네가 할 일이 있냐" 부터 여전히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난 이날만 기다려왔었다. 한국 비행이 생기는 그날을..

한국인 승무원을 채용한 이유는 한국 취항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2005년 한국 비행이 생겼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인천 비행이었다.

 이 유니폼을 입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어떤 느낌일까!!


정말 너무 기대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날을 위해서 한국인 승무원들은 한국어 서비스 교육까지 받으며 한국비행을  준비를 했다.


나도  이제  한국어로  기내방송을 하는구나!! 열심히 기내방송도 따라 해 보고 한국어로 서비스할 때 주의할 점도 배우면서 한국 비행이 현실로 느껴졌다. 한국인 승무원이 한국 비행을 위해서 따로 한국어 서비스까지 받을 정도로 에미레이트 항공은 한국 비행에 많은 신경을 썼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서비스 교육을 마치고  한국 비행을  드디어 로스터에서 발견하는 순간 난 환호를 질렀다.


 드디어 한국비행을 가는구나!


정말 운이 좋게 그달에 한국 비행이 두 개가 있어서 첫 번째 비행은 가족과 보내고 두 번째 한국 비행은 친구들과 보내기로 했다. 드디어 두 번째 한국 비행 가는 날 저녁이었다. 한국 비행은 새벽 2시 30분 출발이고 브리핑은 출발 2시간 전이라  자정 30분에 하고 픽업 버스는 자정에 온다. 그런데 난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보통 보다 빨리 준비했다. 친구들 선물부터 가족선물까지  가방에  다 정리하고  유니폼까지  다 입고 메컵까지  다했는데도  밤 10시 반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지 않는  마스카라와 아이 메이크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저녁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풀메이크업에  유니폼까지 입은 상태로 잠깐 졸았다. 정말 난 잠깐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시계는 자정 25분이었다. 브리핑까지 5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난 정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가 없다' 며 정신없이 브리핑 오피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상황을 얘기를 했다.


'난 이미 비행 갈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는데 잠깐 졸았다.30분만 주면 바로 가겠다. 한국인 스피커인 내가 꼭 가야 된다"고 정말 절규를 했지만.. 내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난 SORRY 란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정말 새벽 내내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친구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다음에 오면 되니까 그만 울라고.. 나중에 오면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다 사준다고 하면서 달래줬다. 그리고 에미레이트 선배들도 내 소식을 듣게 되면서 같은 기숙사 언니들이 걱정돼서   우는 날 데리고 나가 점심을  사주었다. 아직도  그날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안 그래도 너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천 뱅을 못 갔는데  ABSENT(무단결근)로 바뀌면서 스케줄은 전부 깨지고 스탠바이로 바뀌었다. 그래서 3일 내내 가장 힘든 턴어라운드 비행(체류 없이 왕복하는 비행)만 하고 매니저에게 경고까지  받았다. 가고 싶은 비행 못 간 것도 서러운데 계속 안 좋은 일만 연달아 일어났다. 정말 그때 '30분만 앞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리고 ' 시간엄수'가 승무원에게 정말 중요한 자질이라는 것을 이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비행 6년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MISS FLIGHT(비행을 아무런 노티스 없이 안 간 것)이다. 어쩌다가 그리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비행이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확실하게 배웠다.  


소중한  순간을  잃고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큰 교훈을  얻었다.

정말 가장 아찔하면서도 기억하기 싫은  사건인 동시에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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