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자아 존재의 근거로 '의심'을 들었다. 외부 세계의 현상은 내 존재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와 세계의 존재를 의심하는 주체인 자아는 반드시 존재함이 틀림없다.
의심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발전의 원동력이다. 수천 년 간 믿어왔던 천동설에 대한 의심은 인간의 세계관을 뿌리째 바꿔 놨고 신이 왕에게 통치권을 부여했다는 믿음에 대한 의심은 인간의 평등을 가쟈왔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들은 의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우주까지 정복(?)한 과학의 발전으로 물리적 세계의 지식에 대한 확신감, 그리고 침대에 누워 손가락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인터넷 때문인지 현대인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명제에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모르거나 잘못 안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는 건 다른 이야기다.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토-일-월 사흘을 쉴 수 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댓글이 달렸다.
"3일인데 왜 사흘이냐 기레기야"
분명 사흘이 4흘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모를 순 있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의심하지 않았다는 잘못을 저질렀다. 자신이 정답으로 아는 명제(사흘=4일)에 너무나 확신을 가진 나머지, 타인이 말하는 명제(사흘=3일)가 정답이고 자신의 명제가 오답일 일말의 가능성조차 배제한 채, 10초를 투자해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는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감은 공격성을 낳았다. 멀쩡한 기자는 기레기 소리를 들었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배우면 된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배울 수 없다. 의심하지 않는다는 건 더 나은 개인으로서의 성장에 걸림돌을 가지런히 놓아두는 것일뿐더러 남을 공격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서로 물고 뜯어서 분노와 슬픔의 바다가 된 요즘이다. 생각을 먼저 의심해 보면 사람을 의심하는 일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