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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살 Feb 08. 2019

과학의 오만




  “아, 안 죽는다고!”


  여름만 되면 억지로 방문을 닫으며 외치게 되는 대사다. 엄마는 방문을 닫고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속설의 열렬한 지지자다. 그리고 그건 내가 들어본 가장 바보 같은 속설 중 하나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열변을 토해내도 엄마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혹시라도 세간에 떠도는 말이 맞아 소중한 아들이 하루아침에 죽을까 봐 항상 자기 전에 선풍기 시간을 맞춰 놨는지 확인을 한다. 자는 중에 몰래 들어와서 선풍기를 끄고 가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는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자들과 20세기의 종말에 태어난 자들끼리의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는 밤에 집 안에서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렀더니 엄마가 어린아이가 더러운 걸 만지는 걸 볼 때 내는 소리를 내더니 밤에 휘파람 불면 도둑 든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항변하니, “아무튼 그렇다!”라며 논쟁을 일축했다. 다음에 휘파람을 불었을 때는 도둑이 뱀으로 바뀌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로, 식전 밥상을 차릴 때 내가 수저를 밥공기에 수직으로 꽂아서 생긴 일이다. 엄마는 “누가 젓가락을 이래 꼽아 놨노?”라며 수저를 밥에 꽂는 행위는 제사 때 피우는 향을 연상시키므로 산 자의 밥상에서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는 휘파람이나 현관 불과는 달리 반발을 심하게 했다. 수저를 밥에 꽂으면 옮기기도, 놓기도 편한데 그런 미신 때문에 이걸 포기해야 하느냐! 나는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빠는 풍수지리설, 음양오행설 등 동양의 오랜 민간사상을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 실생활에 적용한다. 나는 한 번씩 침대에 반대로 누워서 자곤 하는데(그러면 잠이 잘 온다) 그럴 때마다 슬며시 다가와 “머리는 동쪽이나 북쪽으로 향하게 해서 누워야 된다.”라고 말하곤 했다. 또, 음양의 원리를 몇 시간 동안 나에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집에서는 세대 차이가 만든 미신의 믿음과 불신으로 편이 갈려 있다. 아직 산업화가 덜 되어서 민간 신앙이나 속설이 일상생활에 지배력을 많이 가지고 있던 시대에 자란 부모님으로서는 익숙한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학으로 세상의 원리가 대부분 밝혀진 시대에 태어났고,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Why’ 시리즈 만화책 (과학의 각 분야를 만화로 재미있게 풀어낸 아동용 도서)에서 과학을 읽으며 자랐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면 믿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옛사람들이 부처와 불경을 믿었다면, 현대인들은 과학자와 과학책을 믿고 있다.


  나 역시 과학의 신도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요새 새로이 드는 의문이 있다. 과학이 진리일까? 과연 현대 과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정확한 나침반일까?


  고등학교 때 기독교를 믿는 한 친구와 열띤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인간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 친구는 신이 인간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주장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과 학교에서 배워온 대로 최초의 단세포 동물로부터 영겁의 시간을 지나 인간이 진화해 왔다는 진화론을 주장했다. 아니, ‘주장’이란 단어는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난 진화론을 하나의 설이 아니라 아주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으니까. 이 논쟁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현대 과학을 맹신해왔는지 처음으로 느꼈다. 창조론에 설득된 게 아니라, 진화론을 비판하는 친구의 말에서 새 생각이 움텄다. 내가 믿고 있는 진화론이 ‘진리’가 아니라 ‘가장 유력한 설’ 일뿐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인간이 단세포에서 진화했을지, 지금의 모습 그대로 갑자기 나타났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고작 수 천년 된 인간의 과학기술로 38 억년 생명체의 역사를 정확히 안다고 생각했다니! 아무리 정설로 여겨지는 학설이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추측’에 불과했다. 방금의 38억 년이란 숫자 또한 그렇다.


  먼 옛날 사람들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때 사람들은 자연의 이법에 대해서 인간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닫고,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곳, 보이지 않는 세계에 중대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단계까지 사람들은 겸손했으며 상상의 효용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형이상학이 싹트고 과학이 발달하고 종교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명할 수 있는 세계를 세상의 전부라고 오만하게 생각하면서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실재와 사실의 영역에서 추방한다. 이때 상상은 부질없는 세계를 꿈꾸는 부질없는 정신활동으로 분류된다.

  

  대학 현대시 수업에서 배운, ‘상상’에 대한 한 시인의 관점이다.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로 상상의 것, 보이지 않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저 미신, 혹은 판타지로 치부해왔던 게 얼마나 오만한 태도였는지!  과학은 생물, 물리, 화학 분야에서 방대하고 정교한 지식을 쌓아 왔다. 하지만 그 많은 지식도 이 광활한 자연계(우주)에서 이제 겨우 고향 행성 밖을 맛만 봐 본 종족의 얕은 지식일 뿐일 것이다. 그 작은 걸음마일지도 모르는 과학의 발전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얼마나 자만했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이후로 아무리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여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초능력, 지구 공동설, 동양 철학의 '기' 등… 우습지만 친구가 자신이 자실 외계인이라며 그럴듯한 헛소리를 쏟아냈을 때도 말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것마저도 나는 단박에 헛소리라고 말하지 못했다. 둥근 지구 또한 단세포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가 직접 보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가 추측해놓은 가설일 뿐. 물론 이 경우 근거가 너무나 충분하기에 99% 확신을 가지곤 있지만, 1%의 '그럴 수도 있겠다'의 여지는 남겨 두는 것이  과학과 이성의 오만함을 내려놓는 옳은 태도겠지.


  어쩌면 내가 그렇게 짜증을 냈던 우리 집의 미신들에도 현대 과학의 설명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듣기 지겨워했던 음양이 기운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쪽으로 눕는 게 정말 건강에 좋을 수도 있고, 밤에 휘파람을 불면 정말 액운이 생길지도. 그래도 선풍기는 진짜 아니다. 내가 해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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