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를 다시 읽다

아티스트 데이트 #4. 사도세자

by 찐파워

오늘의 아티스트 데이트 대상은 사도세자다.

설민석 강사님의 책〈버림받은 왕자, 사도〉는 놀랄 만큼 쉽게 읽혔다.
한 시간 반 정도 정독하니 어느새 책이 끝나 있었다.

IMG_6303.HEIC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세 가지였다.


불쌍하다.

주변 환경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는 정말 그렇게 끝날 인물이었을까.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해온 사도세자는
정신병을 앓았고, 사람을 죽였으며, 결국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죽은 인물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 건 그 이미지는 너무 단편적이라는 것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시행한 성군으로 기억된다.
그런 왕이 어째서 자신의 아들을 그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책은 그 맥락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영조는 분명 훌륭한 군주였지만, 아버지로서는 최악에 가까웠다.

아들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컸고,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사도세자에게 전가했다.
영조 역시 천민 출신 어머니를 둔 왕으로서 평생 불안과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그 환경 속에서 사도세자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온다.



책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겨우 2살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너무 일찍이부터 기대를 받앗던 셈이다.
세살때 한자를 읽고 글씨를 쓸 정도로 총명했고, 영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늦둥이 아들이었던 만큼 그 기대는 더 컸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길을 가던 사도세자에게 한 노인이 개인적인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신하들이 말리려 하자 사도세자는 그를 끝까지 말리며 노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한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문보다 무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리청정을 맡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신하들의 의견을 따르면 “줏대 없다”고 꾸짖고, 신하들의 의견에 반대하면 또 그것대로 질책했다.

지속적인 부정과 모순된 요구 속에서 사도세자는 점점 무너져갔다.

결국 영조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을 더듬을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고, 증세는 점점 심해져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기까지 이르렀다. 비극은 그렇게 완성됐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앓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은 타고난 본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둘러싼 환경의 결과였을까.


문과 무, 두 재능을 모두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붕당 정치가 아닌 부자 간의 대화와 신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안타깝다.



인사이트

1.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

사도세자는 세자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선택권이 없었다. 그 점이 가장 안타깝다.

다행히 우리는 다르다. 환경을 선택하고, 바꾸고,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내가 놓인 환경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갉아먹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단편적인 해석은 위험하다

사도세자를 “정신병을 앓고 사람을 죽인 인물”로만 기억한다면 그는 악한 사람으로 남는다.

하지만 맥락을 알면 그는 총명했고, 가능성이 있었으며, 충분히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한 사람을 판단할 때 전체 이야기를 보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