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 5분?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시간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관객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면 영화는 관객의 집중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봉오동 전투의 처음 5분.
일본군 복장의 군인들과 동생을 등에 업은 형제가 두만강을 건넌다. “집에서 편안하게 있으라고 했더니 힘들게 따라와서~~~” 이들은 일본군에게 두만강 건너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였던 것이다. 강을 건너와 다음 길을 안내받은 일본군 장교는 그들에게 작은 보따리를 준다.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고… 동생은 보따리에서 떡을 꺼내 먹으며 좋아하고 그런 동생을 보는 형은 흐뭇하다. 그때 동생은 떡 사이에서 수류탄을 발견하고 형에게 오지 말라는 말을 하고 보따리를 껴안고 엎드린다. 순간 수류탄이 터지면서 동생은 죽고 형은 그 파편에 얼굴이 상한다.
이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일본군의 잔인함에 순간 놀란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만의 잔인함일까? 전쟁의 잔인함이겠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이후 우리 국민들이 독립의 의지를 더욱 다지며 군사훈련학교와 군대에 합류하며 더욱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봉오동 전투는 이를 계기로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첫 번째 전투라고 한다. 1920년 6월 이 전투의 승리가 청산리 전투가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1920년 12월 독립신문에 기재된 기사가 영화의 모티브라고 한다. 실제의 사건을 가지고 세부내용은 창의력을 발휘해 만든 것으로 세부 인물은 창작된 내용이 가미되었다는 설명이 영화의 말미에 나온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을 유인하고 이를 이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략의 승리이다.
영화는 적을 유인하기 위해 우리 독립군의 한 인물을 포로로 주고, 이 포로가 독립군의 진로로 일본군을 유인하도록 한다. 결국 물고기를 잡기 위한 낚싯밥. 죽음이 예고된 희생.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떻게 저렇게 변절할 수 있을까를 속으로 되새겼지만 결국 그의 죽음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견인차는 아니었을까?
봉오동 골짜기의 능선마다, 산속의 매복 지역마다 나오는 군대의 이름들. 단순히 한 독립군만 이 전투에 참여한 것은 아닌 듯하다.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독립군이 이 전투에서 연합하여 일본 정규군에 능가하는 전투력을 보여준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어려울 때 뭉치는 우리의 저력이 여기서도 발휘된 것이다.
영화에는 세명의 일본 배우가 나온다. 일본 정규군 추격대의 장교, 추격대의 정찰병의 장교, 황해철에게 포로로 잡힌 어린 일본병사. 영화에서 두명의 장교는 죽을 맞이한다. 어린병사는 일본군에 의해 부상를 입고 황해철등과 함께 퇴각하던중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이들은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참여했을까?
영화를 만들고 개봉을 기다리며 감독이나 관계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단지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독립을 염원했으며, 열심히 활동했고 희생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아베 정권의 종전 보상문제와 화이트리스트 문제가 함께 대두되면서 반일감정과 일제 불매운동이 영화의 관심을 상승하였고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는 단순히 흥미를 이끌어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역사를 다시 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것이 미디어가 가지는 저력이 아닐까 한다.
적절한 시기에 개봉된 영화 한 편이 가지는 힘. 우리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지만 이것이 국수주의, 군국주의로 향하는 도화선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