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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ep 21. 2020

4.

2020.09.15- 2020 3월부터 9월까지의 이야기

3월에 시작한 9월 15일 현재까지의 재택근무 이야기.


3월 16일 월요일.

오후에 재택근무가 오피셜이 되면서 뒤숭숭한 가운데 한 가지 '뉴스'가 있다고 회사 총무팀에서 오피스를 누비고 있었다. 우리 부서에 다다른 총무팀이 전한 뉴스는 바로 우리 회사 직원 한 사람이 코로나 의심이 되어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뉴욕엔 방역이나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막연하게 회사를 통한 결과 연락을 기다리는 수 밖엔 없었다. 재택을 시작하고 약 열흘쯤 되던 어느 날 사내 이메일 통해 검사 결과는 '양성'이며 법에 의해서 어떠한 정보도 나눠 줄 수 없다고 했다. 총무팀이 구두로 뉴스를 전해 주던 날 무의식 속에 'he'라고 대명사를 사용했었어서 (현재는 공공연히 모두가 알게 되었고 다른 확진자는 없었다.) 당시엔 유추만 해 볼 수 있었다. '개인정보이니 그럴 수도'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한국에서 역학 조사와 분 단위로 쪼개어진 동선을 공개해 큰 확산을 막는 이른바 'K-방역 시스템'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회사에서는 VPN (Virtual Private Network)으로 인터넷과 랩탑만 있으면 언제든 회사 서버에 연결하여 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고, 사실 병가를 내어도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기에 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새로 옮긴 회사는 규모와 다르게 놀랍게도 VPN이 갖춰지지 않아 말 그대로 아프거나 snow day 같은 날이면 정말 온전히 집에서 쉴 수 있었다고 동료가 얘기해 주었다. 우리 회사가 재택근무 시작이 조금 늦은 편이 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첫째로 VPN이었고 건축/인테리어 특성상 팀워크이나 아이디어 공유가 어려울 수 있는 점, 또 VPN을 이용했을 때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잘 돌아(?) 가는지에 대한 의심도 들었기 때문에 망설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VPN을 이용하여 캐드 프로그램으로 선을 그리는데 정말 그 안에 모든 점을 쳐서 라인을 만드는 듯한 버벅거림도 경험을 해 보았었기에 충분히 이해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일의 효능이 떨어질까 봐 매일 아침 살을 맞대고 출근해야 하는 뉴욕의 지옥철 빼고는 재택근무에 대해서 그냥 그랬다. 회사에선 그냥 바로 동료의 데스크에 앉아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도면을 짜고 콘셉트를 내면 될 것을 굳이 채팅 (MS의 Teams를 이용한다)을 통해 말 그대로 'virtually'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첫 주엔 모두가 버벅거렸을 거다. 최소 하루에 3-4건은 '너 로그인돼?' 혹은 '나 말고 또 VPN에서 강퇴당한 사람?' 이러한 질문들이 팀즈로 오갔다. 어떤 날은 전체 서버가 다운이 돼서 오전 한 시간을 공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일도 이루어지고 커뮤니케이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가끔 재택을 하고 있는 내 룸메이트와 내가 동시에 화상 미팅을 한다던지 하는 날에는 열심히 설명하며 내가 share 하고 있는 화면이 얼어버리는 뻘쭘한 경우도 있었지만 쓰고 있는 인터넷 회사에서 속도 업그레이드를 해준 후로는 그런 문제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상외로 쓰는 프로그램들도 큰 문제없이 작동해 주고 있고 다들 오히려 VPN이나 재택의 단점이 능률을 방해하지 못하게 더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나는 생활 패턴도 오히려 더 잘 잡혀서 시간관리가 더 잘 되는 듯하다. '집에 언제 가냐- 얼른 씻고 쉬고 싶다!'라는 생각 없이, 부담 없이 엑스트라로 일 할 수 있고, 당장 없어진 통근 시간 덕에 체력적으로 컨디션에 도움이 되고 또 씻고 머리 만지고 렌즈 끼고 옷 입지 않고 간단한 옷차림으로 9시 전에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리는데 쓸 수 있으니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느낌이기도 하다. 월요병이 옅어진 느낌이랄까....?


이건 어디까지나 회사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나의 시점이고, 회사 입장에선 값 비싼 뉴욕 땅에서 사무실이 사용되지 않은 채 임대료는 나갈 테고, 전체적으로 얼어붙은 경제 탓에 타격을 받은 몇몇의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하면서 디자인비를 받을 수 없게 되는데 직원들 월급은 고정으로 나가야 하니 휘청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게다가 올해 5월에 계획되어있던 사무실 확장공사 (일정기간 공사장과 인부들도 코로나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지만)까지 의도치 않게 모든 게 차질이 생겨버린 탓에 4월에 회사 전체 직원의 약 10%에 달하는 정리해고가 있었다. 갑자기 잡힌 화상 미팅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오전에 대대적으로 인사 정리가 있었으며 우리 부서에서도 2명의 직원을 해고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가슴이 '쿵' 떨어졌다. '아. 정리해고가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어려운 시간인 만큼 이상한 일도 아니겠구나' 하고 내가 나를 다독이듯이 생각했다. 


한 주에 평균 20만 명 정도 신청했다던 실업수당 요청이 코로나 이후 300백만으로 늘어 전화와 서버가 먹통이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갑갑했다. 하지만 일부는 한시적으로 평균 주당 $1,000 정도의 실업수당을 받게 되면 한 달에 4000불은 꼬박 들어온다는 이야기니 나쁘지 않다고도 말했는데,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 있어서 돈은 둘째고 비자 문제가 더 크다. 불법체류를 할 수 없으니 짐 챙겨서 해고 일로부터 60일 안에 미국을 나가야 하는데 이 어마 무시한 코로나가 기회를 앗아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안 될 수는 없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이 해고를 당했지만 회사와의 상의 끝에 무급휴가로 전환됐다. 의(衣)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식(食), 주(住- 뉴욕 집값은 세다)를 해결해야 하니 불확실한 미래와 경제 상황만큼 복직도 미지수이고 수입 없이 지출만 나가는 상황인데, 또 이 경우에는 실업수당을 받는 순간 '나 해고되어 무직이니 돈을 주시오'를 알리는 꼴이니 비자 사수를 위해 신청도 할 수 없었다. 일자리는 열리지 않고 모두 인원감축으로 바쁜데 60일 안에 새로운 고용주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고 사실상 이 시기에 외국인으로서 비자를 지킬 건지 내 통장을 지킬 건지 고민은 무의미하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몇몇 프로젝트가 풀리면서 투입되어 일을 해나가고 있고 사실 한 치 앞을 모르는 지금으로서 나를 믿어(?) 주고 일을 맡겨준다는 감사한 일과, 혹여라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도 후회는 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는 게 지금으로서 최선일 것 같다. 이미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한국에 계신 분도, 내일 월요일을 앞둔 분들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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