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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26. 2020

스테이지 평가

“성실함을 이길 순 없다”

학교에서는 2주간의 학과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필기시험을 봤다. 학교가 자체적으로 만든 일종의 예비 시험인데 그 시험에서 90점 이상 받은 학생들만 미국 연방항공청(FAA) 학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평가 성적순으로 FAA 학과 시험 응시 순서가 정해졌다. 하루에 시험을 볼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가장 점수가 좋은 학생부터 시험을 먼저 볼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밥은 성적순으로 칠판에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 나열했다.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의 이름이 칠판 가장 위에 적혔고 다른 학생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샀다. 은근히 자존심도 걸린 문제였다. 상위권은 항상 한국 학생들의 몫이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부지런했고 다들 하루빨리 점수를 획득한 뒤에 비행 훈련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반면에 파나마 유학생들은 정부 지원금으로 유학을 온 상황이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극소수였다. 자가용과 계기, 사업용 가운데 가장 어려운 학과시험은 계기였다. FAA 학과 시험은 70점만 넘으면 합격이었는데 계기 시험에서 합격점을 넘지 못해 떨어지는 학생들이 종종 나왔다. 배우는 내용 자체가 자가용보다 어려웠고 시험 문제도 까다로웠다.

 

암기한 내용을 칠판에 적어가며 공부한 흔적들


비행을 배우는 미국 학생들은 고득점을 얻기 위해 학교에서 만든 교재 외에도 셰퍼드란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개별적으로 45달러 정도의 돈을 주고 직접 구입해 사용하는 유료 프로그램인데 역대 FAA 기출문제와 해설을 모아 만든 일종의 족보였다. 셰퍼드는 문제 수만수천 개에 달할 정도로 내용이 방대했다. 매일 학교 과제만 풀어도 새벽 2, 3시가 돼야 끝낼 수 있었기 때문에 셰퍼드와 학교 과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밥의 강의를 듣지 않고 몰래 숨어서 셰퍼드 문제를 풀었다.


매일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강의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7시간가량 수업을 듣다 보니 졸리기도 하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넘어 수업이 끝나면 한국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오클라호마 대학 중앙도서관에 모였다. 모르는 문제를 서로 물어보거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었다. 다른 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집중이 더 잘되기도 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워졌다. 나이가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데도 불구하고 비행이란 공통된 분모 하나로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돼 가고 있었다. 자정이 돼 도서관 문을 닫으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마저 하거나 한 학생의 아파트에 모여 나머지 공부를 새벽 늦게까지 이어나갔다.


“고3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지금쯤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S가 말했다. 다들 수험생처럼 열정을 갖고 공부했다. 3주의 시간이 지나고 스테이지 평가를 봤다. 다행히 한 문제도 놓치지 않았고 칠판 가장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스테이지 평가 시험은 기존 과제에서 무작위로 문제를 뽑아 출제했기 때문에 과제만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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