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4일, TV조선은 사회지도층 인사 성접대 동영상 확인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수원 별장 성접대 의혹을 처음으로 알린 보도였다. 항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야기가 실제 존재함을 세상에 알렸다. 언론은 동영상의 실체와 주인공 파악에 나섰다. 취재가 진행되면서 동영상의 주인공은 김학의 당시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임을 모든 언론사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은 꽤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 언론 모두 그를 가리켜 검찰 고위급 공무원이라고만 명명했다. 상대는 법을 잘 아는 검찰 고위급 간부였고 그에 맞설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성접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수원 별장에 각 언론사 기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채널A 사건팀 소속의 모 기자는 그곳 관리인과 친분을 쌓아 기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별장 안으로 진입했다. 그는 관리인 몰래 성접대 의혹현장을 촬영해 단독 보도했다. 채널A 사건팀의 다른 기자는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제보자를 만났다. 영상의 실체를 직접 확인까지 했다. 제보자는 동영상 제공을 대가로 수천 만원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취재 경쟁은 치열했다. 건설업자 윤 씨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기자들은 그가 액수가 큰 공사 수주 과정에서 중개인으로 관여한 건설회사에 모여들었다. 신문사와 방송사 차량들이 회사 건물을 에워쌓다. 건설회사는 보안을 강화했고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회사 안에 들어가기까지는 성공했지만 지하창고 진입을 시도하다 나는 보안 직원에게 붙잡혀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사건팀 후배였던 기자는 나를 대신해 지하창고에 들어가 윤 씨와 관련된 자료들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내게 전송했다. 1시간 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사히 탈출했다. 지금도 당시 생각만 하면 아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후배가 찍어온 자료로 윤 씨의 중개인 행각에 관한 기사를 써서 이틀 동안 단독 보도했다.
취재가 주춤할 때쯤 사회부 모 선배가 나를 불렀다.
"준영아. 너 이 사람 좀 만나고 와."
"누군데요?"
"기자인데 윤중천 연락처를 알 거야."
나는 그의 지시로 당시 시사 전문 주간지의 한 기자를 만났다. 이름이 워낙 특이했던 그녀는 언론사 기자 가운데 유일하게 윤 씨를 만나 장문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쓴 장본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제보할 게 있다고 접근한 뒤 솔직하게 내 신분을 밝혔다. 처음에 불쾌해하던 그녀는 시간이 점점 지나자 난데없이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고향이 어디예요?"
"부산이에요."
"혹시 해운대고등학교 알아요?"
"네. 제가 해운대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별장 성접대 의혹의 두 주인공
자신의 남자 친구가 내 고등학교 선배란 사실에 반색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치과의사로 근무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 나를 바꿔줬다. 나는 휴대전화를 붙잡고 졸업한 지 10년 만에 다 잊어가는 고등학교 교가를 부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였다. 기자가 기자를 취재한 뼈아픈 경험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 나는 기자로서 어린 연차였고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하늘처럼 높은 선배의 지시였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팩트 하나라도 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나서서 할 정도로 무모했고 절박했던 시기였다. 한참 동안 서로 얘기를 이어가다 그녀가 대뜸 내게 물었다.
"채널A가 동영상 돈 주고 샀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네?"
"1억이란 얘기도 있고 5천만 원이란 얘기도 있어요. 얼마 주고 샀어요?"
나는 제보자가 동영상을 팔려고 시도했지만 우리가 거절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온갖 아양을 떨고 그녀로부터 윤중천 씨의 전화번호를 받아냈지만 끝내 그와 연락이 닿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3월 15일 김학의 검사장은 법무부 차관직에 취임했다. 취임 6일 뒤 3월 21일 채널A는 윤중천 전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서를 검찰에 보내면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실명을 적시했다고 단독 보도했다.(관련기사) 수원 성접대 의혹의 주인공이 김학의 법무부 차관임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보도였다.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기사가 나가자마자 보도국 전화는 미친 듯이 울려댔다.
그날 밤 나는 캡과 단둘이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광화문의 유명한 만두전골집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준영아. 너 그거 아니? 이거 다 업(Karma)이야."
"네?"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잖아."
나는 그날 언론이란 내 업의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기자협회는 TV조선에게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했다. 대략 한 달 동안 이어진 성접대 비리 의혹 취재 경쟁 속에서 채널A는 수많은 단독 기사를 보도했지만 일보 경쟁에서 밀렸고 그것이 패배의 요인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채널A와 TV조선이 취재해 단독 보도하면 다음날 지상파 뉴스가 두 회사의 보도를 받아쓰는 형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또 다른 종편은 기자가 속옷을 내리는 원색적인 재연 보도로 방통위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관련기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검찰총장 후보로하마평에 오를 만큼 박근혜 정부의 실세였다. 그런 그의 비위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대한민국 언론은 진보와 보수 너나 할 것 없이 취재에 뛰어들었고 결국 기사로 증명했다. 그 취재를 주도했던 건 두 종편 언론이었다. 언론은 취재 경쟁 속에 성장하고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