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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09. 2020

월천거사를 아시나요.

종편 베끼는 지상파

유리로 된 자동문이 열렸다. 얼굴이 낯익은 그가 사무실로 들어와 편집부국장석으로 걸어왔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부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악수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분장실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부장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월천거사 납셨네."

"네?"


부장이 던진 단어의 의미가 궁금했다. 월천거사?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직업은 분명 현직 교수였다. 부장은 왜 그를 가리켜 법명 같은 이름을 그에게 붙였을까 의아했다.


"너 월천거사가 뭔지 몰라?"

"네."


부장은 껄껄 웃으며 설명했다.  


"매달 천만 원 이상 벌어가잖아."


변호사, 교수, 전직 언론인과 경찰 등 방송 출연만으로 매월 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전문가 집단을 방송 언론계에선 월천거사라 불렀다. 그들은 10분 남짓한 대담 출연에 대략 20-40만 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유명한 출연자의 경우 하루에 많게는 서너 번씩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본업 수입보다 방송 수입이 역전하면서 본격적인 방송인이 된 이들이다. (나는 그들이 받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한다. 정작 그들을 섭외하고 그들의 원고를 쓰는 작가들의 수입을 더 인상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보도전문채널에서 2시간짜리 저녁 뉴스를 맡아 편집부 기자이자 뉴스 PD로 근무할 때였다. 다음날 정치 관련 이슈 대담 시간에 출연할 평론가를 섭외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같은 시간 종편 약속이 먼저 잡혀있다고 했다. 그들은 스케줄에 맞춰 움직였다. 오전에 종편 언론사가 모여있는 광화문에서 한두 차례 방송을 마친 뒤 점심을 먹고 오후엔 MBC, YTN, JTBC, TBS, SBS CNBC 등 방송국이 많이 모여있는 상암동으로 넘어왔다. (역으로 상암동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시간이 금이다. 어느 한 출연자는 자신은 더 이상 10분짜리 대담에 출연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작가로부터 들었다. 그녀는 머지않아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를 꿰찼다. 기존의 방송국 앵커보다 더 큰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말발" 좋은 월천거사들은 작가들의 러브콜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월천거사의 등장은 2011년 종편의 시작과 함께 했다. 종합편성채널은 뉴스와 같은 시사 외에도 예능,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의 편성이 각각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해야 방송 사업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해져 있는 방송 편성 시간을 채우기 위해선 프로그램 제작비의 부담이 꽤나 컸다. 결국 제작비가 덜 드는 뉴스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점차 늘렸다. (종편 재승인 심사 때마다 방통위의 주요 지적 사항중 하나였다.) 기자들의 리포트만으로 2시간짜리 뉴스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낯선 정치 평론가들이 나와 그날의 정치 이슈를 놓고 앵커와 대담하기 시작했다. 간혹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며 나눌 법한, 정치인과 연예인에 대한 험담까지 서슴지 않아 방통위로부터 제재받기도 했다. 내부 구성원들조차 대담 내용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일었다. 방송 언론이 지켜야 할 품위를 떨어뜨린 점이 분명 있었다. 주요 사건 사고 소식엔 전직 경찰들이 출연해 전문가적 입장에서 견해를 늘어놨다. 해를 거듭할수록 종편의 뉴스 시청률은 올라갔다. 낮 시간대 전날 방영한 드라마 재방으로 편성했던 지상파의 시청률을 웃도는 수치까지 도달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KBS, MBC와 같은 공영방송 역시 출연자 대담을 뉴스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종편에서 당직 근무를 함께 하던 한 선배는 지상파 뉴스의 출연 대담을 지켜보며 내게 말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더니."


보도전문채널의 한 선배는 종편 출범 당시 간부들이 전문가 출연 대담을 우습게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저런 걸 한다고 달라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15년이 걸렸는데 쟤들이 해봤자 얼마나 버티겠어?"


종편에서 시작한 전문가 대담이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에 이르기까지 이젠 모든 뉴스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선배의 말대로 그것이 악화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백화점식 리포트 수십 개만으로 뉴스를 만들던 시대는 사라졌다. 보도전문채널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상파 기자들도 종편의 시작에 코웃음 쳤을 것이다. 하지만 종편이 출범한 지 10년째 되는 지금 지상파는 뉴스뿐만 아니라 트로트 장르 예능 베끼기에 혈안이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지상파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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