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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11. 2020

검언유착 vs. 권언유착

언론을 향한 언론의 질타

어느 날 저녁이었다. 소파에 앉아 지상파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전 직장 이름이 큼지막하게 리포트 제목에 떴다. 나는 리모컨을 집어 볼륨을 최대한 키웠다.

 

"이게 뭔 일이야?"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 기자의 비위를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보도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팩트에 근거한 강한 자신감을 갖지 않고서야 타 언론사를 겨냥한 기사를 무턱대고 보도하지 않는다. 녹취록을 봐선 기자의 잘못이 분명했다. 브로커인 마냥 구속된 피의자에게 가족 운운하며 형량을 내세워 압박한 정황이 역력했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혔던 것처럼 일본 특파원 파견을 앞두고 무리하게 서둘러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 욕심이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런데 검언유착이라? 언제부턴가 너 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들이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이 단어를 기사 제목에 달기 시작했다. 뉴스 시청자와 신문 독자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며 자극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유력한 대권 주자이기도 했던 명망 있는 여권 논객을 흠집 내기 위한 보수 언론과 검찰 권력의 야합이란 의미가 명확하게 담겨있었다. 설득력 있게 잘 지은 그럴싸한 정치적 레토릭(수사)이다.

   

한 검사장이 윤석열 검찰 총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기자가 보수 언론 매체 소속이란 탓에 두 사람의 만남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어긋난 사랑과 뛰어난 상상력이 더해 만들어진 허상이라 생각한다. 공영방송 MBC가 이 문제를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2개 이상의 리포트로 제작해 연일 보도해가며 판을 키울 필요가 있었을까란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기자는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누구든지 만나 취재할 수 있는 직업이다. 취재원의 정치적인 성향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가 된다면 그 누구와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다만 기자가 취재하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언론 윤리는 존재한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따르면 취재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물 혹은 증언을 보도에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가 신라젠 대표에게 쓴 편지 속 발언들은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떠나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협박에 가까운 무례한 표현들이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지인 지모 씨에게 접근해 나눈 대화들 역시 취재 윤리상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회유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증언을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과거 MBC 피디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 투성임을 고발할 때에도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황 교수의 제자를 찾아가 그를 회유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제작팀의 취재 방법 역시 설득 보단 협박에 가까웠다. 그런 취재를 통해 MBC 피디수첩은 온 국민이 감쪽같이 속고 있었던 진실을 세상에 밝혀냈다.      


일개 기자가 검사장급 간부와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검찰과 언론 사이 모종의 검은 뒷거래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지나친 측이다. 법조는 기자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출입처다. 검사들이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팩트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기자들은 사돈의 팔촌 인맥까지 동원해 가며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와 연락이 닿길 원한다. 일개 기자가 검사장급 간부를 알고 그와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그 기자의 능력이 출중함을 뜻한다. 법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세상을 뒤흔든 특종은 대부분 검찰발 기사였다. 검사를 통해 얻은 공소장 내용이나 사건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듣고 기사 쓰는 것을 두고 검언유착이라 비난한다면 역대 언론의 특종을 하나같이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분명히 따져봐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드러난 걸로 봐선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한 검사장의 발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에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기사화하는 것은 언제나 후폭풍이 따른다. KBS의 무리한 후속보도는 한 검사장의 고소로 이어졌다. KBS는 사과 방송을 했다. 언론이 자사의 보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는 자존심이 구길대로 구겨졌다. 언론(MBC)이 만든 검언유착(검찰-채널A) 논란은 언론(KBS)의 오보로 권언유착(정부-KBS) 논란으로 옮겨갔다. 급기야 언론 보도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방통위원장의 발언마저 도마에 오르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제는 '권언유착' 이 네 글자가 신문과 방송에 도배되다시피 사용된다. 이 또한 얼마나 잘 지은 정치적 레토릭인가.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은 이제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 대상은 살아있는 권력이어야 한다. 동종업계 경쟁사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애초에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기자의 취재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징계로 처리하면 될 간단한 문제였다. 한 검사장에 대한 의혹 역시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도 전에 섣불리 보도한 정황이 분명해 보인다. 또 해당 기자를 강요 미수죄로 구속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언론끼리 싸우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누군가는 키득거리고 있을 것이다. 정치권력에 놀아나는 한국 언론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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