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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11. 2020

시작

유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낡은 2층짜리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동네였다. 집들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엔 주차장이 있었다. 빈자리에 차를 세운 뒤 문을 열고 내렸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땀이 차 축축했다. 장시간 운전으로 두 다리는 힘이 빠졌는지 땅에 발을 닿는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어깨는 돌처럼 빳빳하게 굳어있었고 허리는 뻐근했다. 나는 목을 뒤로 젖히고 등을 꺾은 뒤 최대한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자연스레 입이 벌어지더니 하품이 터져 나왔다. 깜깜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박혀있는 밤하늘의 별들과 간간이 들려오는 곤충 울음소리만 선명했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노을의 붉은 잔 빛만이 땅거미가 내려앉은 섬을 희미하게 비췄다.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 두리번거리는 그때 눈 앞에 어렴풋이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저 전화 주신 분 맞죠?"

"네."

유타 오렘을 떠나기 전 정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하루 만에 처음 듣는 한국말이었다. 그가 내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집은 저쪽이에요."

"네."

SUV에 싣고 온 짐들을 모두 놔둔 채 그를 따라 모퉁이 옆에 있 집으로 향했다. 그는 무심하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의 어깨너머 조그마한 거실과 부엌이 보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 셋이 자그마한 빨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콘솔 박스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날 반겼다. 그리고 마저 게임을 이어갔다. 주차장까지 날 마중 나온 그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안경을 끼고 있었던 사실을 나는 그제야 확인했다. 그는 계단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일단 방부터 보시죠."

"네."

그를 따라 폭이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2층에 올라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방문을 그가 열었다. 방은 꽤 넓었다. 킹 사이즈쯤 돼 보이는 커다란 침대가 창문 옆에 있었고 그 옆에 책상으로 쓴 기다란 검은색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방문 옆으로 옷장까지 갖춰진 꽤 그럴싸한 방이었다.

"여기가 쓰시게 될 방이에요."

"네."

2층에는 방이 모두 세 개가 있었고 가운데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1층엔 거실과 부엌, 다용도실이 있었다. 세 명의 유학생이 집세를 3 등분해서 나눠 쓰는 주택이었다.

"어때요?"

"네. 괜찮은데요."

"그럼 언제부터 사실 생각이세요?"

"오늘 당장 여기서 자도 되죠?"

"네."

"침대는 들고 가시나요?"

"아니요. 원래 쓰던 형이 두고 가기로 했대요. 필요하시면 그냥 계속 써도 돼요."

차에 가서 일단 당장 밤에 쓸 세면도구를 챙겨 왔다. 짐을 나르는 동안 1층에 있던 그들은 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1년간 꾸준히 해왔던 회계학 공부를 미련 없이 접고 무작정 유타를 떠났다. 데드라인이 남아있던 유일한 학교에 원서를 고 합격소식을 받자마자 천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렌터카를 몰고 달려왔다. 황금을 찾아 떠난 프런티어 서부 개척자들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영화 더 록, 원초적 본능, 행복을 찾아서, 현기증의 무대이자 1960년대 히피의 탄생지, 성소수자들의 아지트, 미국의 반전 운동과 평화 운동의 성지 등 그곳을 수식하는 말은 셀 수 없없다. 수많은 대명사를 지닌 것처럼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문화를 내뿜는 도시였다. 장시간 운전에 온몸이 고단했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지낼 설레는 마음에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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