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다수의 절대불행
지나의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본 <이선 프롬>
지나는 창가에 올려놓은 제라늄 화분에서 살짝 누른 잎 두 세개를 분지르듯 똑똑 따냈다. 제라늄 꽃이라도 없었다면 스탁필드에서도 가장 허름한 이선의 낡은 농가는 그가 말하듯 "공기를 뺀 유리그릇 속"처럼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낮고도 무거운 풍경 한 가운데 잔뜩 눌려있었다. 지나는 제라늄을 아예 뿌리채 뽑아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남의 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마사 이모만큼 시든 잎 하나 없이 잘 키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뭐든 각별히 보살피지 않으면 이렇게 금방 시들어버린다고."
새삼 이선 앞에서 마사 이모를 칭찬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지나는 누렇게 시들다 못해 넝쿨 줄기처럼 말라비틀어가고 있었다. 확연하게 숱이 줄어든 힘없는 머리카락을 굽슬거리게 하는 크림핑 핀을 꽂았지만 움푹 팬 뺨 위로 도드라지는 광대뼈와 납작한 가슴은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병자라는 핑계를 대는 편이 나을 듯했다. 마을 사람 누구라도 지나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곁에 있는 이선에게 굳이 상기시킬 필요조차 없었지만 지나는 늘 자신의 병세를 화제로 삼았고 그 밖의 일에는 굳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선의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지나는 점잖고 말수가 적은 이선의 성격을 그저 타고난 성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7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이선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쉽게 받았으며 다정한 인간 관계를 맺으면 뼛속까지 따스해진다는 사실이 더 이상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선은 혹독히 추운 겨울, 그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누구보다 건강했던 지나가 병약해지자 결혼과 헌신, 돌봄으로 보상해주었다. 지나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은 후에라도 프롬 농장의 다른 묘비명들처럼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집안에 은은한 제라늄의 향이 퍼져나가기 전까지 지나의 확신은 묘비명에 새겨도 좋을 만큼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먼 친적뻘 되는 고아 소녀 매티를 집안에 들인 것은 지나의 실수였다. 고양이처럼 작은 몸집에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손목을 지닌 어린 매티가 어느덧 풍만하고 여성스러운 처녀로 자라나 돌비석처럼 굳어버린 이선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선은 집앞에 제라늄 꽃밭을 만들고 부엌에서 우유를 젓거나 늦은 밤 두 여자가 잠들면 남몰래 바닥 청소를 해놓았다. 지나는 매티가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과 원초적 활기가 공기의 흐름마저 바꾸어놓는 사이에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지나는 모든 것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을 더 힘없는 존재로 치장했다. 어두운 새벽녘,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웠어도 지나는 매티가 온 후로 이선이 매일 아침 공들여 면도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지나는 돌봄이 필요한 병자였고 남편의 애정을 갈구하는 여자였으나 오랜 사색은 그녀를 악의 화신으로 변화시켰다.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세사람을 향해 달려오는 순간, 지나는 매티와 이선을 단둘이 집안에 남겨놓고 이웃 마을로 떠난다.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최대의 무기였다. 아내로서 이선의 인정에 호소하거나 악을 쓰거나 심지어 매티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 이유는 없었다. 그저 운명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가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선에게는 이미 좌절된 과거가 있었다. 오랜 고통과 실패와 쓰라림과 헛된 노력의 잔재들로 인해 스스로 제풀에 지쳐 두 손을 들고 항복할 덫을 놓았다. 관습과 시선, 도덕과 양심이라는 덫은 한 사람의 불행과 두 사람의 행복을 맞바꿔주지 않았다.
지나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없는 동안 아끼던 접시가 깨진 상황을 빌미로 "저녁상을 예쁘게 차리고 싶었다는" 매티의 변명을 유도해낸다. "그래, 내가 돌아서기를 기다렸다가 말이지." 라면서 지나는 매티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선)을 빼앗아갔음을 힐난하고 내쫓을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막아서는 이선을 향해 "매티를 한집에 데리고 있는 한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릴지"를 내세워 두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날 밤 세상의 편견과 관습, 운명의 사슬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선과 절박해진 매티는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허술한 썰매 위에 서로를 포박한 채 견고한 세상을 향해 돌진한다. 이들의 무모한 항거는 지독한 현실로부터 한치도 달아나지 못하고 지옥에 자신들의 사랑을 결박한다.
세사람의 운명은 하향평준화를 이루며 각자 더할나위없이 불행해진다. 썰매충돌사고 이후 쇠락해가는 낡은 농가에서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세사람. 그러나 지나는 목 아래로 불구가 되어 자신처럼 시들어가는 매티를 보며 신세한탄인지 우월감인지 모를 승리에 도취된다.
자주색 리본을 매고 붉게 상기된 뺨으로 새처럼 지저귀던 매티가 이제는 자신의 돌봄 없이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을 뿐더러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말하듯 "프롬네 농장에 사는 사람이나 무덤 아래에 있는 사람이나 이렇다 할 차이가 없는 듯"보이지만 낡고 삐걱거리는 부엌 안에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이 소설은 절대소수의 절대행복이라는 오징어게임의 원칙보다 더 충격적인 절대다수의 절대불행으로 결말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