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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스타 Dec 27. 2020

한창 부모님이 보고 싶을 나이, 서른 둘.

갑자기 효녀가 돼서.

갑자기 효녀가 됐다.
이런 나 자신이 나도 참 당황스럽다.

내 나이 서른둘.
"엄마 보고 싶어요, 아빠 보고 싶어요"라고 밖에 나가서 울며 말하기엔 낯선 나이다.
이 사실을 아는 나는 밖에 나가서 울진 않지만, 잠들기 전 베개를 베고 누워 '어무이 보고 싶어, 아부지 보고 싶어'하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외친다. 종종 눈물도 흐른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올해 3월, 결혼과 동시에 첫 독립을 했다.
우리 집에 자식은 나 혼자다, 외동딸. 엄마와 아빠에게도 딸내미와 헤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로에게 낯선 일이었다. 나는 남편의 예언대로 정확히 일주일 동안 아주 해피하게 잘 지내다 7일 차 되는 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대성통곡하며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어재꼈다. (설거지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남편은 그 이후로 식기세척기를 샀다) "꺼억 꺼억. 우리 엄마랑 아빠가 나를 이렇게 키워준 거야? 꺼억꺼억.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살았어. 이제 알았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하고 말이다.

결혼을 하고 H를 통해 날마다 새로운 우주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엄마 아빠 품에서 떠나 H와 함께 일궈나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는, 이런 경험을 못해본 우리 엄마 아빠가 자주 생각난다. '이렇게 좋은 카페는 우리 엄마랑 아빠도 참 좋아할 텐데. 이렇게 맛있는 거 우리 엄마랑 아빠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밥 먹고 산책하는 거 우리 엄마랑 아빠도 좋아할 텐데.'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전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곳 가면, 맛있는 것 먹으면 H가 생각났고 '역시 여행은 H랑 가야 재밌어' 라며 부모님과의 여행의 마침표를 찍던 나였다. 엄마 아빠에게 자주 잔소리를 하고, 자주 짜증을 부리고, 결혼 전엔 자주 싸워서 '역시 우리는 안 맞나 봐.' 라며 얼른 H와 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효녀가 됐다.
떨어져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이 뻔하디 뻔한 말이 나를 자꾸 울린다. 집을 떠나 사니 엄마 아빠와 같은 한 집 안에 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나는 자주 운다. 새로운 집에서 남편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나에게 빈자리는 없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나의 빈자리가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셋은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엄마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고, 아빠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다.

우리 아빠의 하루가 그려진다. 우리 아빠의 서글픈 마음이 그려진다. 매일 이른 아침, 밥을 먹고 출근하는 아빠. 한 시간씩 산책 겸 걷기 운동을 마친 후 출근을 한다. 일을 한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한다. 일을 한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다. 퇴근한다. 나는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도 쏙 빼닮아서 우리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아빠는 이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할 것이다. 이 마음이 그를 한편으로 쓸쓸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주 외로워하고, 자주 허전하고, 자주 그립다.

우리 엄마의 하루가 그려진다. 우리 엄마의 외로운 마음이 그려진다. 매일 이른 아침,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엄마는 우리 집 막둥이(강아지)와 둘 뿐이다. 엄마는 일을 하지 않기에 하루 종일 집에 있다. 그나마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떠난 후 빈자리를 채워주는 낙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도 못 만나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제일 걱정인 건 엄마의 밥이다. 잘 안 챙겨 먹고 대충 때운다. 나도 출근으로 H 없는 점심을, 날 위해 차려 먹는다는 것이 여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는 더하다. 자신을 위해 밥을 차리지 않는다. 엄마의 끼니가 늘 걱정이다. 외로움도.

엄마랑 아빠랑 못다 한 이야기가 산더미다.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언제 가장 힘들었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꿈은 무엇인지. 엄마 아빠의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지, 제일 잘한 일은 무엇인지. 사실, 그 어떤 질문보다 가장 궁금한 건 모든 질문의 1순위가 아니라, 세세한 아주 소소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알고 싶고,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날마다 알고 싶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매일 궁금하다. 매일 놓치며 오늘 하루도 지나갔다.

내가 이 나이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겠지?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내겠다. 혼자 운다. 요새는 자꾸 울어서 나를 충만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H에게도 미안하다. 우리 엄마와 아빠가 나 없이도 충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서른 둘, 한창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해도 괜찮겠죠?


붕어빵 세 개가 마치 엄마, 아빠, 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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