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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Sep 29. 2022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위플래쉬 리뷰


[영화 위플래쉬 리뷰]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1. Information

위플래쉬(미국, 106분, 데이미언 셔젤)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 신입생 '앤드류'가 최고의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쳐'교수를 만나 폭언과 학대를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집착과 광기, 완벽한 스윙에 대한 이야기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이 대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3. Appreciation review

tip.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위플래시는 특별하다 못해 괴기스러운 성장영화이다. 재즈가 지니고 있는 섬세함, 역동성, 즉흥성을 그 성질의 어두운 면만 포착하여 힘 있는 박자감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섬세함은 과하면 날카로워진다. 매우 찬찬하고 세밀하다 못해 정확한 조각으로 깨진 접시의 파편처럼 플랫쳐(J.K. 시몬스)는 제자들을 상당히 날카롭게 가르친다.

역동적인 것은 과하면 날뛰게 된다. 플랫쳐의 교수법에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점점 음악을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중심을 잃어버린 채 날뛰고 만다.

재즈에서는 즉흥적인 연주 기법을 용인하고 리스너들은 그 기법을 통해 재즈 연주자의 역량과 유니크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데, 이 즉흥연주도 최소한의 악곡 규범은 지켜져야 한다. 영화에서 플랫쳐와 앤드류는 재즈와 천재성을 향한 서로 다른 동경과 열망을 갖고 있지만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을 가뿐히 넘겨 알게 모르게 해를 입히게 된다.


드럼 연주자이자 음악학교 1학년인 앤드류는 우연히 교내 재즈밴드의 지휘자이자 지도교수인 플랫쳐의 눈에 띄어 그의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지휘자의 스타일이 곧 재즈밴드의 운명을 결정하므로 플랫쳐 그는 완벽하지 않은 것은 용인하지 않았고, 연주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자들이자 밴드부원들을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최고의 연주자가 되고 싶던 앤드류는 그에 의해 천당과 지옥을 맛보게 된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영원불멸의 교수법, 관계를 주도하고 사람을 길들일 수 있는 그 장치가 영화 사이사이에 스릴러적인 요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앤드류와 함께 나도 탈진할 것 같았다. 제2의 찰리 파커가 자신으로부터 나오길 바란 플랫쳐는 “템포가 빨랐는지, 느렸는지”에 대한 답을 강박에 가깝게 앤드류에게 요구하고, 앤드류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한참 못 미치는 연주자임을 실감함과 동시에 강한 집착과 집념으로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 아니 자신과의 혈투를 하기 시작한다.


완벽해야 하기에 늘 긴장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 그 불안으로 인해 서서히 망가져 가는 앤드류의 심리상태와 영화의 전개가 함께 가는 점이 인상 깊다. 더블타임스윙 연습장면에서 자학에 가까운 몰입을 하던 앤드류의 표정과 영화를 보는 내 표정이 거의 비슷해진다. 특히 교통사고의 장면이 1인칭 앤드류의 시점에서 일어남으로써 그가 스스로 한 번은 깨졌다는, 부서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강한 힘은 사물을 부순다. 안에서 밖으로 향한 앤드류의 몰입과 집착은, 밖에서 안으로 향한 플랫쳐의 강압과 만나 팽팽하게 유지하던 중 결국 부서졌다. 앤드류는 부서진 후에야 자신에게 가해진 힘을 실감한다.


플랫쳐의 비인권적인 교수법이 학교에 고발되고, 더 이상 사제지간이 아니게 된 둘은 재즈바에서 다시 만나 다음 연주회에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앤드류를 망친 것은 플랫쳐이고, 앤드류를 연주자로서 다시 한번 구원하는 것도 플랫쳐이다. 또한 앤드류를 망친 것은 앤드류 자신이 지닌 집착이고, 영화의 마지막 10분에 도달하면 그를 구원한 것 또한 그가 가진 집념이다.


마음에 쏙 든,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 앤드류는 재즈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표현”에 집중했다. 핍박과 불공정에 대한 저항, 불안전함으로부터 내면을 지키기 위한 표현의 장치로서 스틱을 다시 잡은 앤드류는 막막한 무대 위에서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내 가며 비로소 재즈 정신을 구현해내었다.






4. Postscript


나를 망치고, 나를 세우는 것은
내게는 결핍이다.
삶에 있어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을 여러 번 망친 것도,
나보다 더 사랑한 사람을 해친 것도,
그래서 내가 싫어진 일도
내가 가진 결핍을 내가 어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것과
그를 다치지 않게 해야 하는 다짐도
나 자신을 안아야 하는 이유도
결핍이 부르는 일이다.
나를 망치는 것과 나를 세우는 것이 같다.



5. Blending

그녀를 살리게도 했지만 그녀를 망치게도 한 것은 그녀 자신이자 자신이 꾸미는 무대였습니다. 영화 주디(미국, 118분, 루퍼트 굴드)를 함께 볼만한 영화로 추천합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배우로 알려진 주디 갈랜드(1922~1969)의 마지막 런던 공연을 내용으로 한 음악 영화입니다.

그녀는 미성년자로 ‘도로시’ 역에 캐스팅되어 소속사로부터 배우 관리를 빙자한 엄청난 학대를 당하게 됩니다. 약물로 수면시간을 조절하고, 식사 대신 영양제로 채우며 영화 관계자들의 언어폭력에도 시달립니다.


모와 어른들의 학대를 받아 감정적 충족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녀는 약물과 술, 남자들의 사랑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녀가 혼자 있으면서도 유일하게 채워지는 곳은 무대였고, 관객들의 관심을 느끼며 교감할 수 있는 곳에서 그녀는 행복합니다.


이 영화도,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Over the rainbow’에서 가슴을 저릿하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채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의 삶은 외롭고 고달픕니다. 그녀의 노래와 연기, 그녀의 무대는 그녀를 세기의 배우로 만들기도 했고, 그녀의 정신과 영혼을 아예 망쳐버리기도 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마지막 15분이 회자되는 영화입니다. 음악영화이지만 기존의 음악영화들과는 다른 내용과 전개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스스로를 망가뜨리게도 하지만, 도리어 살아내게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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