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브루잉(brewing) : 영화 ‘원스‘
야구를 보다 보면 방망이에 잘 맞았고 소리도 좋아 홈런인 줄 알았는데 파울인 상황이 있다. 날아가는 공이 정말 홈런이 아닌 건지 끝까지 바라보는 시선,
루킹삼진보다 낫지 싶다가도
몇 발자국 나간 게 부끄러워지는 시간은 유독 오래 정지된다.
해양대학교에 다닌다며 항해사를 준비 중인 그를 만난 건 내게 의외의 이벤트였다. 당시의 나는 합격을 장담했던 9급 공무원 면접시험에서 떨어져 위로를 받고 있었다. 면접은 웬만하면 잘 안 떨어진다는데 오죽 못났으면, 오죽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고,
내 곳간에는 고민만 가득해서 이대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 만난 그는 혼자 배낭여행을 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남미. 내게는 죽을 때까지 가진 않을 것 같은 곳.
그는 곧 바다로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대충 사는 것 같았다. 여유롭고 느긋한 그가 내겐 눈앞의 면접관만큼이나 캄캄하게 보였다.
9급 공무원을 바라는 나는, 바다를 가겠다는 그와 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야구와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본 영화는 그도 봤고, 내가 듣는 노래를 그는 기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야구장을 같이 가고, 영화 원스(Once, 2007)와 팝가수 제이슨므라즈(Jason Mraz)를 함께 좋아했다. Geek in the pink를 박자에 맞게 부르면 동시에 웃기도 했고, 처음부터 맞았던 건지 슬슬 서로를 맞춰주고 있는 건지 헷갈릴 쯤에 내가 다니던 학교로 찾아와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여보세요’라고 답한 내 목소리와 동시에 흘러나온 영화 OST falling slowly의 기타 연주가 너의 고백인 줄 알았다. 영화를 봐서 그게 이별 노래인 줄 알았으면서도 그 순간을 너무 기다렸던 나머지 믿고 싶은 것만 믿었고, 연습했는데 망한 것 같다는 너의 말이 기특해서 나는 다음엔 뒷부분도 들려달라고 말하며 그때부터 내 모든 환경을 그날에 맞췄는데 그런 내가 부담됐는지 더 이상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고 너는 인사 없이 바다로 갔다. 속사정을 알고 싶었다.
오늘 추출할 영화는
누구에게나 있을 단 한 번의 순간, 영화 원스이다.
원스(Once)
아일랜드, 드라마
2007.09.20. 86분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음악이 이야기를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평론하며 2007년 개봉한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다.
감독 존카니와 남자 주인공인 글랜 한사드는 The Flame이라는 밴드에서 같이 활동한 인연으로 이 영화에서 만났다. 감독의 부름에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영화음악작업을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내정된 주인공이 출연을 고사하게 되면서 감독이 다시 제안하는 바람에 이 영화로 데뷔를 했고,
덕분에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인 질감의 몫을 해냈다. 그가 내보이거나 들려주는 것은 이 영화의 표면, 윤기가 없고 거칠지만 희망이 가미된 느낌을 극대화했다.
남자주인공 ‘그’는 영화 초반에 보이는 모습에서처럼
하나에 꽂히면 끝을 봐야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친구 같은 거지, 거지 같은 친구가 자신의 돈을 소매치기를 하자 끝까지 달려가 돈 몇 푼 쥐어주는데, 그것만 봐도 그는 인간미가 있다. 그런 그가 한 때 열렬한 사랑을 했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그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노래로 그 속을 달래고 있었다.
그는 버스킹 중에 자신의 음악 속 의미를 알아봐 주는 ‘그녀’를 만나 속내를 보이며 가까워졌다. 둘은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하러 자주 들르는 가게에서 좀 더 서로의 음악을 들어보기로 하는데 그가 내보인 음표와 쉼표 사이로 그녀가 천천히 스며드는 장면이 흐뭇하다.
‘그녀’는 일찍 결혼했지만 갈등이 있어 별거 중인 남편과 그 사이에 낳은 아이가 있고, 타국에서의 삶이 고단한 편이다. 그녀에게도 사실 관계와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남편이 있다.
‘그’는 전연인을 잊지 못해 절규하듯 노래하는, 돈도 마음도 가난한 사람이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지 않던 두 주인공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감정이 우연히도 깊게 만나는 지점을 설명해야 할 때 영화는 대사를 노래로 대신했다.
그는 밤낮으로 자신의 속을 달래던 노래 대신에 그녀라는 새로운 대체감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달래고 싶었던지 부단히 함께 있자고 제의한다. 그녀는 불장난밖에 더하겠다며 농담으로 거절하지만, 최선을 다해 거절하는 그녀도 겨우 버티는 건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게 용기라면, 사랑을 잃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생의 단 한 번이라는 것은 아쉽고, 왠지 모르게 완성되지 않은 것은 귀하다. 남의 이야기라면 참 안타깝고, 영화에서 그려낸 것은 고상한 느낌도 든다. 영화 화양연화에서도,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들이 끝내 묻지 않고 묻어버린 광포한 열망들이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이끌어 냈다.
늘 닿아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그녀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함께 하고 싶었던 바람을 속내에 묻으며 대신 그녀의 꿈을 응원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그녀에게 화음과 반주를 입혀달라는 제안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자작곡을 녹음하는데 그 노래는 가장 그를 닮은 고백이었다.
그와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부르지도 불려지지도 않는데, 비로소 언젠가 누군가에게 진정한 이름으로 불리며 꽃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