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formation
봄날은 간다(한국, 106분, 허진호)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나 녹음여행을 떠나고, 자연스레 가까워지며 쉽게 사랑에 빠지지만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은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며 서서히 삐걱거린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상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방황한다.(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오늘이 오늘이 아니라, 어제의 위에 있는 느낌이 들었을 때
3. Appreciation review
직장 동료는 이 영화가 인생영화라고 했다. 그리고 은수(이영애)가 나빠서, 상우(유지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두 번은 못 볼 영화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은수를 조금 두둔해서 다시 보면 은수가 조금 더 보일 수도 있고,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오는 봄이지만, 그 봄을 붙잡아서 여름을 막은 사람이 없다. 영화는 두 사람의 설레는 시작과 깊어지는 감정,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으로 인해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소리와 공간이라는 일상의 장치를 이용해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하였다.
은수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이고, 상우는 소리를 채집해서 미디어에 사용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로 둘은 협업을 위해 처음 만났다. 겨울에 만난 그들은 이미 첫 만남에서부터 상우가 은수의 빨간 목도리와 물색없는 낮잠을 보며 먼저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은수와 상우의 관계 변화를 연극처럼 3막으로 구성한다면 각각의 장은 그들의 악수로 구분된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원할 때, 헤어질 때 각각 악수를 했다.
은수는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시할 때 소화기 사용법을 물어보는 것 같다. 상우에게도, 음악평론가인 게스트에게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 안전핀을 뽑아야 사용하는 소화기처럼 은수가 누군가를 만나려 한다는 것은 어쩌면 애써 자신을 지켜내던 찰나 불처럼 강한 혼란 속에 어떤 봉인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이혼한 경력이 있다. 상우에게 무심하게 과거를 털어놓지만, 상우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그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아주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대사로 그들의 관계는 깊어졌다.
라면, 먹을래요
자고 갈래요
한없이 긴장되고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원하는 마음을 누르거나 숨길 수 없는 사랑의 시작을 거창하지 않고도 혹하게 잘 표현했다.
영화에서 남행열차, 아리랑, 사랑의 기쁨,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의 노래들이 반주 또는 인물들의 콧노래나 허밍으로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들이 모두 상실과 헤어짐을 담고 있어서 봄의 끝에 그들의 사랑이 곧 변할 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을 걱정해 줄 사람이 없는 은수와, 밥을 함께 먹는 식구가 있는 상우는 관계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다른 생각을 했다. 은수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를 원할 때 함께 한 공간에 있는 사랑을, 상우는 사랑한다면 기꺼이 서로의 일부가 되거나 가족이 되는 사랑을 꿈꿨다. 그들의 입장과 방향이 다르다 보니 서운한 상황이 꽤 생겼다. 각자의 욕구와 바람을 잘 느끼고 정리해서 솔직하지만 예의 있게 전달해야 작은 균열이라도 때울 것인데, 그러기에는 은수는 미성숙했고 상우는 자신의 감정만 컸다. 한쪽은 자신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랐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기만을 바랐다. 둘 다 안 됐다. 마지막 장면과 그 배경이 참 아름다운데, 악수하며 헤어지는 둘을 보면 문득 은수는 자꾸 이런 식으로 살면 어떻게 누군가와 깊고 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상우는 이미 넘쳐버린 마음을 주워 담을 수 없어 한동안 얼마나 미련에 괴로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나눠가진 봄을 어떻게 기억할까
4. Postscript
분명 새벽이 오고 아침이 되었지만 마치 어제를 한 번 더 사는 사람처럼
금방 지나간 밤을 굳이 또 살아내던 때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생색 없이 고단하게 지켜내는 이들을 보며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이 오히려 안전하고 자유롭게 느껴질 때 쯤
가끔은 춥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갑자기 더워지기도 하는 봄을 내 품에서 잃어버리고 나는
봄을 찾으러 다녔다
당신이 가져갔으니 얼른 내놓으라고 했다
누가 가져간 게 아니란 걸 알기까지
은근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내가 두고 온 봄 뒤에 바로 가을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
5. Blending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은수는 뭔가 두려움이 많아 보였습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적극적이었으면서도 정작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소극적이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분명 사랑이 오고 있지만 자신의 과거로 인해 늘 두려워하는 백만 엔 걸 스즈코(일본, 121분, 타나다 유키) 속 그녀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스즈코(아오이 유우)는 자신의 행동과 실수로 전과자가 되었고, 꿈과 사랑이 많은 소녀에게 어느새 감춰야 할 과거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다니며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 자아가 희미해지만을 바랍니다. 그녀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기준은 일을 해서 백만 엔이 모이면 떠난다는 것입니다. 백만 엔은 그녀를 전과자로 만든 액수이기도 했지만, 혼자 살 집을 구할 수 있는 자립의 기준이자 그 정도의 돈을 모을 때까지는 어떤 곳에서 어느 누구와도 깊은 교류 없이 적당히 웃으며 강하게 지내다 떠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스즈코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야 할 때쯤에는 마침 백만 엔을 모아 그곳을 떠나는 선택을 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과거 또는 약한 모습을 알게 될까 봐 두렵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다 보니 상처를 받으면 그대로 무너질까 봐 오히려 말을 하지 않거나 피하면 좀 살 것 같습니다.
스즈코는 동생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며, 그동안 위축되어 피해왔던 과거를 뒤로 한 채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가 그랬듯, 스즈코도 미련이 미련을 끌어오는 공간으로부터 겨우 한 걸음을 떼어 내 다음을 향해 갑니다. 그들의 마지막 장면은, 그들에게 다가올 사랑을 조금 더 응원하고 싶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