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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by 문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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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처럼 04~08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을 겪은 세대에게는 공통적인 무의식적 집착이 있을 것이다. 바로 부자가 되라는 무의식의 압박 말이다.


지금 세태로 치자면 어처구니가 없을 테지만, 당시만 해도 ‘가난한 것은 곧 무능’, ‘부는 사회기여의 지표’,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로버트 기요사키 책이 불티나듯 팔려나갔고, 학교 공부만 하는 것은 멍청한 것이며, 이익을 내는 기업은 곧 지고의 선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부자가 안되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는 성형외과가 최고의 인기과 였으며, 중국인은 끝도 없이 한국에 성형 받으러 올 것 같았고, 투자 은행이나 경영 컨설팅 관련 전문가들의 몸값이 엄청나게 상한가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의 최고 전공은 개발자 아닌가.)


당시 의대를 다니던 내 입장에선 참 답답했던게, 나는 그냥 의학 자체가 좋았을 뿐이고 의학 자체가 사회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주변에서 너도나도 돈 안되는 전공을 하면 곧 망할 것처럼,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처럼 말했었다. 그리고 당시에도 빚을 내서 상가를 사지 않거나, 최소 아파트라도 2~3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만약에 필자가 어떤 논쟁적인 의학적 주제에 관해 아주 quality 좋은 논문을 쓴다면, 그 논문이 사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그로 인해 사회 전체에 돌아가는 수혜가 눈에 선명하게 보였는데, 당장 의대 내신 1등급이 성형외과를 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정말 답답했다.


지금도 개원해서 돈 잘버는 친구들 보면 열심히 벌라고 한다. 대신 필자에게 잘못하고 있다거나, 더 돈 버는 행위를 늘리라거나, 지적질을 하는 상대를 아주 싫어한다. (사실 아예 만나질 않는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개개인이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절히 function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유지에 아주 중요한데, 한 주체가 혹은 일군의 주체가 그 자신의 이익을 과도하게 늘리려고 노력하면 그 반대급부가 시간차를 두고 반드시 따라온다.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돈을 축적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시간차를 두고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은 주체는 그 주체의 노력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공동선에 합치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이제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 개인으로서 원활히 function 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아주 가치있는 학술적 업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아주 좋겠다. 지금도 수 많은 전세계 학자들이 연구업적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 연구결과들이 국가, 기업, 개인, 기타 수 많은 주체들의 의사결정에 기반이 된다. 이런 결과들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 파급효과와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다. 딜리버리 히어로에 배민을 2조원에 매각한 김봉진만 인류에 대단한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블로그 글: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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